강원도 강릉중앙교회(이철 목사) 주변에는 명소가 많다. 동쪽으로 3㎞쯤 가면 송정해수욕장이 나오고 북쪽으로는 경포호가 보인다. 강릉 올림픽파크는 교회를 둘러싸고 있다. 하키센터와 컬링센터가 교회 뒷마당에 있다. 사실 교회 자체가 명소다. 1901년 설립된 이후 118년 동안 주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해왔다.
2006년 2월 부임한 이철 목사의 ‘서번트 리더십’이 주민들과의 거리를 더욱 좁혔다. 종처럼 교인과 주민을 섬기겠다는 다짐을 담은 목회철학이다. 목사는 복음을 위해 존재하고 교인과 지역주민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게 이 목사의 소신이다.
이런 확신으로 그는 평창동계올림픽과 ‘강릉·원주 간 복선전철’ 유치에 앞장섰다. 주민들도 교회의 이런 노력을 잘 알고 있다. 교회와 지역 사이의 담장이 사라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역 발전에 필수적인 사회 기반 시설을 유치하기 위해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주민들과 친구가 된 것이다.
생각처럼 쉬운 일만은 아닌데 어떻게 가능했을까.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대회의실에서 만난 이 목사는 “특별한 건 없습니다. 주민들의 아픔에 귀 기울이면서 함께 울고 웃었던 게 전부”라고 답하며 환하게 웃었다.
이 목사가 부임했을 때, 강원도는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두 번째로 도전하고 있었다. 지역 전체가 올림픽 유치 열기로 들썩이고 있었다. 2003년 체코 프라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때 한 차례 고배를 마신 뒤여서 도민들의 마음은 더 간절했다.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이 목사는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기도회를 열고 강원도 지역 교회들의 연합기도회에 설교자로 나서 올림픽 유치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2007년 7월 과테말라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또다시 유치에 실패했지만, 이 목사는 좌절하지 않고 교인들과 의기투합해 2011년 총회를 노렸다.
2011년 IOC 총회를 앞두고 도민 2018명이 참여하는 도민합창단을 기획했던 시민운동가도 이 교회 엄창섭 원로장로였다. 도민합창단은 동계올림픽 실사단에 큰 감동을 줬고 개최지 확정에도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고 교인들의 자부심은 컸다.
이 목사는 ‘강릉·원주 간 복선전철 추진협의회’ 공동대표도 맡았다. 부임 후 실시했던 지역조사 결과 매년 2000여명이 강릉시를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서울과 강릉을 연결할 빠른 교통수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교회는 대대적인 서명운동을 시작해 15만4000명의 동의를 얻었다. 이 목사는 이를 갖고 이명박 전 대통령 대선 캠프를 찾아갔다. 대선 캠프는 강릉과 원주를 잇는 복선전철을 대선공약으로 확정했다.
이는 결국, 2017년 12월 KTX 강릉선 개통으로 이어졌다. 코레일에 따르면 KTX 강릉선은 개통 1년 동안 465만명이 이용했다. 하루 평균 이용객만 1만3000명이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효자 노릇을 하는 셈이다.
“지역 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하다 보니 강릉에서 유명인이 됐습니다. 주민을 위한 일이 교인을 위한 봉사라 여겼습니다. 부임 초창기에 지역을 위한 기도를 많이 하니까 교인들이 의아해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목사라면 당연히 해야 할 기도라고 설득했습니다. 최근 교인 통계를 내보니 등록 교인이 5000명을 넘어섰더군요. 강릉이 안정됐으니 이젠 교회가 내실을 다지고 더욱 성숙해져야 할 때입니다.”
내실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으로 교인들과의 협력을 꼽았다. 목회란 교인들이 뭘 원하고 있는지 살피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걸 거듭 강조했다. “목사는 교인들이 고민하는 게 뭔지, 뭘 좋아하고 불편해하는지 관심 가져야 합니다. 목사가 교인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생각이 교인보다 앞선다 해도 보조를 맞춰야 합니다. 혼자 가면 목회가 아니죠.”
요즘 이 목사는 ‘복음의 가치가 살아나는 교회’를 만들자는 기도를 한다. 교회다운 교회가 되도록 하자는 취지다. 이를 통해 교회의 역할이 확대되고 건강한 부흥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고 했다. 답은 성경에서 찾고 있었다.
“성경 읽는 참맛을 다시 느끼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설교를 위해 성경을 읽었다면 지금은 깊이 있는 성경 읽기를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영어 성경도 함께 읽으며 성경 읽기의 기쁨을 더하고 있어요. 달고 오묘합니다. 교회의 부흥도, 성숙도 모두 성경이 주는 은혜 속에서 진행돼야 합니다.”
교회는 1901년 5월 24일 원산에서 사역하던 로버트 A 하디 선교사가 한 초가집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된 강릉의 어머니 교회다. 교회는 하디 선교사의 사역을 발굴하는 일도 시작한다. 이 목사는 “캐나다 토론토 출신인 하디 선교사가 감리교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 큰데도 남아있는 사료가 많지 않다”면서 “하디 선교사가 세운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는 이들이 선조의 흔적을 찾는 건 일종의 책임”이라고 밝혔다.
손정도(1872~1931) 목사의 신앙과 삶을 추적하기 위해 ‘한국교회사 포럼’을 연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손 목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부의장을 맡았던 교회와 사회 지도자였다. 이 목사는 “손 목사는 기독교가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삶으로 보여주신 분”이라며 “젊은 세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