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모(16)군은 5개월 전부터 복통에 시달렸다. 배앓이가 심하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이어졌고 설사도 잦아 고통스러웠다. 동네의원을 찾아가도 단순 장염이나 신경성인 것 같다는 얘기만 들었다. 부모 또한 “아이가 학업 스트레스로 예민해져 그런가 보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 ‘크론병’이라는 염증성 장질환을 다루는 방송을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를 데리고 대학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는 아니나 다를까 크론병이었다. 한창 자랄 나이인 최군은 증상 조절 뿐 아니라 성장에 지장이 없도록 의료진과 상의해 영양 섭취 등에 주의를 기울이며 치료받고 있다.
크론병은 궤양성 대장염과 함께 대표적 염증성 장질환이다. 염증성 장질환은 말 그대로 장(腸)에 만성적인 염증을 일으키는 병이다. 대장(특히 직장)에만 국한돼 염증이 나타나는 궤양성 대장염과 달리 크론병은 입에서부터 식도 위 십이지장 소장 대장 항문에 이르기까지 소화관 전체에 걸쳐 어느 부위에든지 염증이 생길 수 있다.
복통, 설사 증상이 4주 이상 지속되고 특별한 이유없이 몸무게가 줄거나 발열, 전신 나른함, 혈변, 항문 주위 염증 및 통증 등이 동반되면 크론병을 의심해야 한다.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 염증성장질환클리닉 이강문 교수는 23일 “궤양성 대장염과 크론병은 같은 듯 하면서도 다른 점이 많아 마치 사촌쯤 되는 질환으로 생각하면 된다”면서 “크론병이 20대에서 많이 발생하는 반면 궤양성 대장염은 20대부터 40, 50대에 걸쳐 고르게 발생하는 차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궤양성 대장염은 주로 대장의 표층(점막 및 점막 아래층)을 주로 침범해 얕은 궤양을 만들고 장에 구멍이 뚫리는 천공 등의 합병증은 드물다. 하지만 크론병은 장의 근육층을 넘어 깊은 궤양과 염증을 초래해 장이 들러붙는 협착과 누공(장 주변에 고름 주머니가 생김), 천공 등 큰 합병증 발생이 흔하다.
이 교수는 “크론병 환자가 열 나고 배 아프다고 하면 자신도 모르게 장에 누공이나 천공이 생긴 것”이라며 “크론병 환자의 40%가 이런 장 누공 혹은 천공으로 응급수술을 받는다”고 했다.
비교적 가벼운 단순 장염이나 과민성대장증후군과도 구분해야 한다. 급성 장염의 경우에도 설사 구토 복통 등 증상을 보이고 심하면 변에 피가 섞여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장염은 대개 갑자기 발병하고 대부분 일시적이다. 탈수와 음식섭취만 주의하면 짧게는 3일, 길게는 1주일 안에 증상이 개선된다.
과민성장증후군은 최소 6개월 전부터 시작된 만성 복통과 복부 불편감, 배변습관 변화(변비 혹은 설사)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 염증성 장질환과 헷갈릴 수 있다. 하지만 과민성장증후군의 경우 배변 전에 아프다가 배변 후에는 호전되는 복통이 특징적이다. 크론병처럼 체중 감소나 혈변은 드물다.
이처럼 젊은층의 장을 괴롭히는 크론병이 과거 서구 국가에서 흔하고 아시아에서는 보기 드물었지만 근래 한국 등 동양권에서도 급증 추세를 보이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크론병 진료 환자는 2014년 1만6728명에서 지난해 2만2408명으로 5년간 34%나 증가했다. 연령별로는 20대가 35.2%로 가장 많았고 30대(25.7%) 10대(17%) 순이었다. 10~30대가 전체의 77.9%를 차지했다.
크론병 급증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서구화된 식습관, 산업화에 따른 생활환경 변화, 공해물질, 흡연, 모유수유 감소, 항생제 노출 등 여러 요인이 거론되고 있다.
이 교수는 “특히 젊은세대의 경우 1인 가구가 늘면서 간편한 즉석식품이나 육식 등 기름진 음식, 패스트푸드 등의 섭취가 증가한 것이 장 환경 변화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젊은 나이에 발생한 크론병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건 환자 수 증가 때문만은 아니다. 40세 이후 발병한 크론병은 증상도 비교적 가볍고 치료 경과도 좋은 편인데 반해 10대에 발병한 경우 증상이 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복통과 설사에 자주 시달리고 장 염증으로 영양 흡수가 제대로 안 되면 체중 감소는 물론 성장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여성들은 임신 걱정을 많이 하는데, 대부분의 크론병 환자들도 정상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다. 다만 염증이 심한 활동기에는 유산, 조산의 위험성이 다소 높을 수 있어 주치의와 상담을 통해 관리 노력이 필요하다.
크론병은 한번 발병하면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는 만성질환으로 평생 관리와 치료가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아직 완치법은 없다. 스테로이드 치료제, 면역억제제, 생물학제제 등이 증상을 좋게 하고 합병증을 줄여주는 걸로 알려져 있다. 다만 면역억제 약물을 쓸 땐 독감 등 감염병에 잘 걸릴 수 있어 필요한 예방접종을 꼭 하는 게 좋다. 단 생백신 접종은 금물이다.
성빈센트병원의 염증성장질환클리닉은 소화기내과와 대장항문외과, 소아청소년과, 류머티스내과, 피부과, 안과, 영양팀 등의 전문가들이 진단에서 치료까지 모든 과정에서 손발을 맞추며 치료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환자들과 SNS를 통해 질병과 치료 정보 공유에도 적극 나서 호응을 얻고 있다.
이 교수는 “크론병은 증상을 잘 조절하고 관리하면 학교나 직장생활을 이어가는데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면서 “다만 청소년기 환자들은 스스로 질환을 관리하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기 때문에 주변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