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타파’ 강타… 강풍·물폭탄 덮친 남부 주택 무너지고 바닷길 모두 끊겨

입력 2019-09-23 04:01
제17호 태풍 ‘타파’가 한반도를 강타한 22일 중형 요트 한 대가 울산 동구 일산해수욕장 앞바다에 좌초된 채 거센 파도에 휩쓸리고 있다. 타파는 강한 비와 초속 35m의 강풍을 동반해 전국에서 최소 17명이 숨지거나 다쳤으며 항공과 선박 결항, 축대 붕괴와 정전 피해가 잇따랐다. 연합뉴스

강한 비바람을 동반한 제17호 태풍 ‘타파’가 22일 제주도와 한반도 남부지방을 강타해 최소 17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결항과 통행 제한이 잇따르면서 제주도와 남부지방 하늘길·뱃길이 끊겼다. 전국 곳곳에서 정전 피해도 잇따랐다. 다행히 중단됐던 제주의 항공편은 재개됐다.

타파가 한반도에 상륙하기 전부터 사상자가 속출했다. 21일 오후 10시30분쯤 제주도 먼 남쪽 바다에서 북상하며 뿜어낸 강한 바람에 부산 부산진구 한 2층 단독주택 기둥이 무너졌다. 이 사고로 1층에 거주하는 70대 여성이 주택 잔해에 깔려 9시간여 만인 22일 오전 7시45분쯤 숨진 채 발견됐다.

구조대원들이 22일 태풍 ‘타파’ 영향으로 무너져 내린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의 한 2층 주택 잔해에서 매몰된 70대 여성을 찾고 있다. 연합뉴스

태풍이 제주도 남쪽 250㎞ 부근으로 다가온 22일 오전 9시쯤에는 부산 연제구 거제동에서 오토바이 운전자인 60대 남성이 강풍에 넘어진 가로등에 부딪혀 다쳤다. 1시간 뒤에는 부산 수영구 한 아파트 자전거 보관소 지붕이 바람에 날려 행인 40대 남성이 머리를 다쳤다.

전남 목포에서도 부상자가 나왔다. 50대 여성이 오전 10시쯤 강풍에 떨어져나간 교회 외벽 벽돌에 맞아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교회 주차장에 있던 차량 5대도 파손됐다. 오후 1시15분쯤에는 울산시 울주군 온산항 유화부두 잔교 인근에서 선장 A씨(66)가 자신의 선박이 표류 중이라는 연락을 받고 나와 배를 인양하기 위해 해경 경비함을 타고 선박에 오르는 과정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숨졌다.

제주도가 타파의 직접 영향권에 들어가면서 결항이 잇따랐다.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는 오전 6시30분쯤 제주에서 김포로 떠날 예정이던 아시아나항공 OZ8900편을 시작으로 출발 246편과 도착 243편 등 총 489편의 결항을 예상했다. 그러나 오후 7시쯤 제주에 도착한 김포발 이스타항공 ZE225편을 시작으로 항공사별로 항공기 운항을 다시 시작했다.

여객선을 포함한 선박 8편이 멈추는 등 바닷길도 전면 통제됐다. 부산항만공사는 부산항에 있던 선박 117척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경남 거가대교와 신안 천사대교 등 다리길도 통제됐다.

태풍이 동반한 강풍에 날아가다 전신주에 걸린 전남 구례군 산동면의 비닐하우스. 연합뉴스

강풍과 함께 물폭탄이 쏟아지면서 시설물 피해가 잇따랐다. 제주도와 남부지방은 기록적인 호우와 강풍에 시달렸다. 전날부터 이날 오후 6시 현재 강수량은 제주 어리목 752㎜, 지리산(경남 산청) 277㎜, 전남 광양 백운산 213.5㎜ 등을 기록했다. 이날 최대 순간 풍속은 제주 서귀포 지귀도 초속 40.6m(시속 146.2㎞), 전남 여수 간여암 초속 37.7m(시속 135.7㎞) 등을 기록했다.

제주도에서만 주택 4동과 농경지 6000㎡, 도로 12곳이 물에 잠겼다. 제주 일부지역에서 단수 피해가 4건, 태양광 시설 전도 피해가 1건 발생했다. 가로등과 교통표지판, 신호등 27곳이 파손됐다. 부산에서는 아파트 담장 하부 축대가 무너졌고, 어선 1척이 좌초됐다. 울산에서는 요트 2척이 가라앉고, 통선 2척이 바다로 떠내려갔다. 낙동강 김천교와 동진강 정읍천에서는 홍수주의보를 발령했다.

부산 벡스코 천장 구조물이 떨어져 매달려 있는 모습. 연합뉴스

강원도·광주·전남·전북·경북·부산·울산·경남·제주·대전 8093가구에서 정전 피해를 입었다. 부산 남구 대연동에서는 200여가구의 전기가 끊기기도 했다. 한 공사장에서는 임시로 세운 가설물이 강풍에 쓰러지면서 전선을 건드렸다. 20개 국립 공원(지리, 한려, 가야, 덕유, 다도, 월출, 한라 등) 504개 탐방로 출입이 전면 통제됐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줄줄이 행사를 취소해야 했다. 태풍에도 행사 강행 의사를 밝혀 비난을 받은 대구 달서구의 ‘달서 하프마라톤 대회’가 끝내 취소됐다. 서울시는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 예정이었던 ‘서울 차 없는 날 2019’ 행사를 취소했다.

23일 오전까지는 전국에 많은 비가 내리고 바람이 강하게 불 것으로 예상된다. 태풍의 이동 길목에 있는 제주도와 남쪽 동해안에는 최대 400㎜ 이상의 물폭탄이 쏟아질 것으로 관측된다.

기상청에 따르면 타파는 제주도 동쪽 바다를 지나 밤사이 부산 앞바다를 거쳐 23일 새벽 독도 동북동쪽 동해 바다로 빠져나갈 전망이다. 23일 오전까지 예상 강수량은 강원 영동·경상도·전남·제주도가 100~250㎜, 경기 남부·강원 영서 남부·충청도·전북이 20~70㎜다. 서울·경기 북부·강원 영서 북부에는 5~40㎜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됐다.

타파는 전날 고수온 해역을 지나며 중심기압 970hPa(헥토파스칼), 중심 부근 최대 풍속 초속 35m(시속 126㎞)의 중형급 태풍으로 발달했다. 태풍의 직접 영향을 받은 제주도와 남부지방에선 최대 순간 풍속 초속 35~45m의 강한 바람이 불었다. 허술한 집이 무너지거나 기차가 전복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밖의 지역에서도 초속 15~30m의 바람과 함께 많은 비가 내릴 전망이다. 윤기한 기상청 통보관은 “남부 지방과 동해안 등은 23일 아침까지 태풍의 영향을 받겠다”고 말했다.

오주환 방극렬 기자, 전국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