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다음 달 2일부터 열리는 국정감사에 또다시 기업인들을 잔뜩 부를 방침이다. 시급한 경제 활성화 법안 처리는 등한시하면서 애꿎은 기업인들만 불러 생색내기용 호통치기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 유권자들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기업인들을 앞다퉈 부르는 일도 잦은 것으로 알려졌다.
22일 국회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정운천 바른미래당 간사는 농어촌상생기금 출연 실적이 저조하다며 기업 규모 1~15위 그룹 총수와 경제 5개 단체장 등 18명을 증인·참고인으로 신청했다. 다만 여야 간사 간 협의를 통해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장인화 포스코 사장, 최선목 ㈜한화 사장, 홍순기 GS 사장, 이갑수 이마트 사장 등 대기업 5곳의 대표를 부르는 선에서 합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도 망 사용료 실태 파악을 위해 네이버 등 IT 기업 대표들과 황창규 KT 회장,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을 포함한 통신사 임직원들을 두고 여야가 막판 협의 중이다.
여야가 이미 합의한 상임위원회의 증인·참고인 명단을 봐도 기업인이 적지 않다. 환경노동위원회는 자동차 배출가스 조작과 관련해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총괄이사와 포르쉐코리아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여수산단 대기오염물질 배출 측정 조작 질의를 위해 LG화학·한화케미칼·롯데케미칼·금호석유화학·GS칼텍스 등 여수지역 공장장들도 부르기로 했다. 각 상임위는 오는 25일까지 명단을 의결하면 돼 다른 상임위에서도 기업인 증인·참고인이 속출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이번은 내년 총선을 앞둔 마지막 국감이어서 의원들이 지역민들에게 존재감을 보여주기 위해 증인·참고인 신청을 앞다투고 있다. 실제로 자유한국당 소속 한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 내 롯데 하도급 업체 관련 민원을 묻기 위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복지위원회 소속 한 의원도 편의점 식품위생법 준수 실태를 점검하고자 박재구 BGF리테일 사장, 허연수 GS리테일 사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복지위 관계자는 “실무자를 부르는 게 효율적일 수 있는데 굳이 기업 총수나 대표를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지역 민원에서 비롯한 보여주기식 증인 신청이 여럿 보인다”고 말했다.
기업인 국감 증인 요구는 해마다 증가 추세다. 17대 국회에서는 연평균 52명이었으나 18대에 77명, 19대에는 124명이었고 20대에서는 지난해까지 159명의 기업인이 국감장에 섰다.
기업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한 대기업 국회 담당자는 “20대 국회 마지막 국감이어서 화제성을 노린 무리한 증인 신청이 있을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