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나치를 표방하는 그리스 극우 성향 황금새벽당이 황혼에 접어들었다. 황금새벽당은 그리스 경제위기와 난민 사태에 편승해 대중적 인기를 얻으면서 국회 진출까지 이뤄내면서 승승장구해 왔다. 하지만 최근 총선에서 참패하고 재정난까지 겹쳐 위기에 내몰린 상황이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전 총리가 이끌던 포퓰리즘 정권이 장기간의 긴축정책 끝에 인기를 잃고 무너지면서 좌우를 막론하고 급진 세력의 인기가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황금새벽당은 최근 아테네 중심가에 위치해 있던 5층 규모의 중앙당사를 폐쇄했다. ‘황금새벽’이라고 적힌 간판과 함께 나치 상징 하켄크로이츠 문양을 변형한 당기가 나부끼던 건물은 그동안 황금새벽당의 약진을 상징해 왔다. 하지만 지난 7월 총선에서 참패한 뒤 국가의 재정 지원이 끊기자 더 이상 건물을 유지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당수 니콜라오스 미칼로리아코스는 지난 14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다른 정당처럼 수백만 유로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면 당사를 계속 보유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황금새벽당은 4년 전인 2015년 총선에서 7%를 득표했다. 300석 중 18석을 얻으며 급진 좌파 시리자, 중도 우파 신민당에 이어 제3당의 지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올해 열린 총선에서는 고작 2.9%를 득표하는 데 그쳐 의석 확보를 위한 하한선인 3%에도 이르지 못했다. 4년 만에 의회에서 쫓겨난 황금새벽당은 지역 당사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고 핵심인사들이 돌아서는 등 쇠락 징후를 보이고 있다. 황금새벽당 소속 유럽의회 의원이 탈당하고 무소속을 선언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황금새벽당은 군인 출신인 미칼로리아코스가 1980년 극우 잡지 ‘황금새벽’을 창간한 것을 시발점으로 삼는다. 93년 이 이름으로 정당 등록을 하며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한동안 군소 정당에 불과했던 황금새벽당은 2010년대 들어 경제위기와 난민 문제가 불거지면서 급속히 세력을 확장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아테네 시의회에 진출한 데 이어 2012년 총선에서 6.9%를 득표하며 국회 입성까지 성공했다.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3석을 확보했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지금 황금새벽당을 비롯한 급진 정치세력의 인기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분위기다. 치프라스 전 총리가 이끈 급진 좌파 시리자는 2015년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집권했지만 4년 만에 중도 우파 성향 신민당에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가디언은 21일자 분석기사에서 “네오나치가 활동할 수 있게 자양분을 제공해온 국민적 분노는 차츰 사그라졌다”며 “그리스 국민들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포퓰리즘으로부터 등을 돌렸다”고 평가했다.
황금새벽당의 폭력적 성향도 인기를 떨어뜨리는 데 한몫했다. 황금새벽당 당원들은 2013년 반파시스트 래퍼 파블로스 피사스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외에도 각종 폭력사건에 계속 연루되면서 무려 69명이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 중에는 의원 등 지도부 인사들도 대거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황금새벽당 인사들이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즘에 지나치게 경도돼 있는 것도 거부감을 일으키는 요인이다. 황금새벽당에서 활동하다 탈퇴한 30대 변호사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황금새벽당은 정치세력으로서 확장력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