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한국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에 따른 양자협의 요구에 응하면서 두 나라가 대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다만 입장 차이가 적잖은 데다 양자협의 과정에서 통상분쟁이 해결된 사례가 적다. 실질적 갈등 해소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본과의 WTO 분쟁이 최장 2~3년이 걸리는 장기전으로 흘러가는 분위기다.
2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지난 20일 한국 정부가 WTO를 통한 분쟁 해결 절차의 하나로 요청한 양자협의 수락 의사를 공식 통보했다. 외교채널을 가동해 구체적 일정을 협의하기로 했다.
양자협의는 WTO 분쟁해결의 첫 단추다. WTO 제소국이 상대국에 양자협의 요청서를 보내는데, 피소국은 요청서 수령 10일 이내에 회신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지난 11일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종 수출규제에 대한 WTO 제소 의사를 밝히고 양자협의 요청서를 보냈다. 협의는 피소국의 협의 요청서 수령 후 30일 이내 개시해야 한다. 이어 60일 안에 합의를 해야 한다.
정부와 통상 전문가들은 양자협의에서 갈등이 해결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이 양자협의를 수용한 것은 WTO 제소에 따른 일상적 절차에 불과하다. 양자협의에 일본이 전향적 입장으로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 일본이 한국 정부의 조선업 구조조정 대책을 WTO에 제소했을 때에도 한·일 양국은 양자협의를 실시했었다.
또 통상적으로 양자협의는 고위급보다 과장급 실무협의 성격이 강하다. 한·일 통상갈등과 같이 큰 사안을 놓고 실무자들이 만나 입장 차이를 좁히기는 쉽지 않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과 현재 어느 정도 급에서 협의할지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60일 이내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제소국인 한국은 WTO에 ‘분쟁해결기구(DSB)’ 설치를 요구해 재판 절차를 거칠 수 있다. DSB의 판단 결과가 나오기까지 15개월가량 걸린다. DSB 판정에 어느 한 국가가 불복해 최종심까지 가면 2~3년이 소요되기도 한다.
한국 정부는 아울러 일본이 안보상 수출우대국인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한 조치와 관련해서도 WTO 제소 여부를 검토 중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종에 대한 수출규제와 달리 백색국가 배제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서 금지한 ‘수출제한’ 효과를 확인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정부 관계자는 “백색국가 배제까지 더하면 일본과의 통상분쟁은 장기전이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종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