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2017년 9월 ‘정점’을 찍고 하강 중이라는 게 공식화됐다. 통계청은 경기가 꺾인 시기를 공식 선언했다. 이에 따라 수축 국면을 벗어나 ‘반등’하기 위해서는 경기 진단이 더 중요해졌다. 하지만 정부 안팎에선 한국 경제의 총수요 부족 여부를 분석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한국 경제는 생산·투자에서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최근 들어 소비도 주춤하다. 그런데 통계 시계열이 끊겨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이 어렵다. ‘디플레이션(deflation·물가가 하락하고 경제 활동이 침체되는 현상) 공포’마저 불거지고 있지만 경제정책을 수립할 때 기반이 될 통계 흐름이 사라져 버린 셈이다.
22일 정부와 연구기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가계 소비’를 살펴보고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통계 시계열이 사실상 끊어졌다. 기초 자료가 될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가 개편을 반복하면서 분석이 어려워진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소비 지표에 대해 소득과 대비하거나 연령별로 분석해 보고 싶은데, 기초가 되는 가계동향조사 시계열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가 2017년 9월 이후 수축 국면에 들어간 건 대외여건 악화에 따른 제조업 위기, 수출 부진 때문이다. 생산과 투자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그나마 ‘효자 지표’는 소비였다. 소비는 미약하지만 상승세를 이어갔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소매판매 지표조차 두 달(6~7월) 연속 감소세다.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찍었다. 소비 부진의 원인을 찾는 분석이 절실한 상황이다. 다만 원인 파악은 쉽지 않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는 2016년까지 한 가구의 소득과 지출을 함께 조사했었다. 한 가구가 특정 기간에 얼마를 벌고, 얼마를 썼는지 ‘가계 수지’ 파악이 가능했다. 그런데 소득 누락 등을 이유로 가계동향조사는 2017~2018년에 소득과 지출을 별도 조사하도록 바뀌었다. 소득은 경제활동인구조사의 다목적 표본을 이용해 분기별 공표됐고, 지출은 전용표본을 활용해 연간으로 발표됐다. 소득과 지출이 서로 다른 표본, 다른 시기를 반영한 것이다. 심지어 연간 단위로 발표되는 지출의 경우 소비는 올해, 소득은 직전 연도가 적용된다.
결국 정부와 연구기관 입장에선 한 가구의 같은 시기 소득·지출을 연결해서 볼 수 없게 됐다. 2017년을 기점으로 같은 표본이 과거에 어떤 소득과 지출 형태를 보였는지 ‘시계열’을 연결하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더 큰 문제는 가계동향조사가 또 수술대에 올랐다는 점이다. 올해부터 소득과 지출 조사가 다시 합쳐졌다. 통합조사 결과는 내년에 발표한다. 통합조사가 부활해도 끊긴 시계의 복구는 어렵다. 올해부터 시작된 통합조사는 2016년 이전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다목적 표본’과는 다른 ‘전용 표본’을 쓴다.
한 가구의 소득과 지출을 대비해 연구할 수 있는 ‘통계’가 올해부터 새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전 가구 소득·소비 형태를 연구하는 작업은 불가능해졌다. 소득주도성장을 강조하면서 가계동향조사 통계가 중요해지자 여러 번을 손질하면서 ‘누더기’가 된 것이다.
통계청도 고민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2019년을 기점으로 ‘증가율’ 등 개편 전 통계와 시계열을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하지만 2016년, 2017~2018년, 2019년 이후 소득과 지출 표본들은 각각 달라 시계열 단절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