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바이든 父子 조사 재개’ 압력 넣었다

입력 2019-09-23 04:08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선두를 지키고 있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내년 대선 민주당의 유력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그의 아들에 대한 조사를 재개하라는 압력을 가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번 의혹은 내년 대선 구도를 뒤흔들 수 있는 폭발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권력을 남용해 외국 정상에게 대선 경쟁자의 뒷조사를 요구했는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게다가 민주당 경선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는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도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자신이나 우크라이나 가스회사의 이사회 멤버였던 아들의 비리 사실이 드러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WSJ 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 25일 코미디언 출신으로 5월에 취임한 젤렌스키 대통령과 여러 차례 전화통화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과 그의 아들 헌터에 대한 조사를 재개하라는 압박을 가했다고 보도했다. WSJ는 21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자신의 개인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와 협력할 것을 8번 가까이 촉구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조사를 요구한 사건은 우크라이나 검찰에 대한 바이든 전 부통령의 압력 행사가 핵심이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바이든의 아들 헌터가 이사회 멤버로 있었던 우크라이나 민간 가스회사에 대한 수사 당시 미국 부통령이었던 바이든이 우크라이나에 “빅터 쇼킨 검찰총장을 해임하지 않으면 10억 달러(약 1조1800억원)에 달하는 미국의 대출보증을 보류하겠다”고 위협했다는 것이다. 쇼킨 검찰총장은 결국 해임됐다.

트럼프 진영의 줄리아니 변호사는 이 문제를 계속 물고 늘어졌다. 줄리아니 변호사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젤렌스키 대통령 보좌관인 안드리 예르막을 만나 해당 가스회사에 대한 재조사 등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정부 간 물밑거래를 의심할 만한 심증도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후 요구했던 정상회담을 모른 체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유엔총회를 계기로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을 갖기로 했다. 미국은 또 2억5000만 달러(약 2900억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군사지원을 보류했다가 최근 지원을 확정했다.

바이든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혐오스럽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이는 엄청난 권력남용으로 보인다”면서 “하원은 이를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지금도 계속 범죄를 저지르는 대통령이 오벌 오피스(백악관 집무실)에 앉아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공세에 나선 바이든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지금은 바이든 편에 서 있는 민주당의 경쟁자들이 대선 후보 경선이 계속될 경우 이 문제를 가지고 바이든을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을 옹호했다. 바딤 프리스타이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나는 (두 정상 간) 대화가 어떤 내용인지 알고 있으며, 압력은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과 언론 등 비판세력을 겨냥해 “그들은 ‘바이든 스캔들’을 ‘트럼프 스캔들’로 돌리려고 애쓰고 있다”면서 “트럼프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