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최후 옵션은 전쟁… 48시간 내 이란 제재 발표”

입력 2019-09-20 04:08
신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지명된 로버트 오브라이언(왼쪽) 보좌관이 1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탑승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 피격 사건에 대한 미국 정부의 태도가 갈수록 강경해지면서 중동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 국무부가 이번 사건의 배후를 이란이라고 규정한 가운데 이란에 대한 군사공격 가능성을 시사해 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전쟁’이라는 단어까지 꺼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날 석유시설 피격과 관련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를 긴급 방문했다. 그는 제다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기자들에게 “이번 사건은 예멘 반군이 아닌 이란의 공격”이라며 “지금껏 보지 못한 규모의 공격으로 사우디에 대한 직접적인 전쟁 행위”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유엔총회에서 대(對)이란 공세의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트럼프 대통령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이란에 대한 공격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겠다. 알다시피 많은 옵션이 있다. 최후의(ultimate) 옵션이 있고, 그것보다 덜한 옵션들이 있다”고 말했다. ‘최후 옵션이 핵 타격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아니다. 최후의 옵션은 전쟁 돌입(go in war)을 의미한다”며 “우리는 매우, 매우 강력한 위치에 있다”고 답했다. 전쟁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대이란 압박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 다만 그는 “(지금) 최후의 옵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며 당장 군사행동에 들어가는 것은 아님을 시사했다.

전쟁 카드까지 거론했지만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은 직접적 보복 공격보다 경제 제재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우리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를 갖고 있다. 나는 그것을 강력한 힘의 표시라고 생각한다. 공격하기는 매우 쉽다”면서도 ‘이라크 전쟁’ 사례를 거론하며 “우리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조지 부시 행정부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중동을 미국 구상대로 재편하겠다는 기대는 이라크 안정화 작전이 실패하고 아프간 전쟁이 길어지면서 산산조각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이라크전을 최악의 실패로 간주하며 미국이 세계 경찰 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자주 드러내 왔다. 막대한 비용만 들어가고 실익은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적 대응을 미루겠다는 뉘앙스를 풍기면서도 조만간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강화할 방침이라는 점은 분명히 했다. 앞서 트위터를 통해 밝힌 ‘이란 제재 대폭 강화 지시’와 관련해 “앞으로 48시간 안에 그것(대이란 경제 제재)을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이란은 미 국무부가 제기한 공격 배후설과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제재 강화 방침에 강력 반발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가 미국 재무장관에게 ‘이란에 대한 제재를 대폭 강화하라’고 명령했다고 한다”며 “미국이 (이란의) 일반 시민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인정한 것으로 전쟁과 테러를 중단하라”고 비판했다.

이란 정부는 이에 앞서 지난 16일 ‘사우디 석유시설 공격은 이란과 관계없는 일’이라는 주장의 외교 전문을 스위스 외교관들을 통해 미국 정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이란 관영 IRNA통신은 “이란 정부가 이 전문을 통해 미국이 이란에 적대적인 조처를 한다면 즉각 대응할 것이고, 이는 구두경고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