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뤼도, 갈색분장 ‘인종차별’ 논란 ‘진보 아이콘’ 흠집… 내달 총선 악재

입력 2019-09-20 04:05
쥐스탱 트뤼도(왼쪽 네 번째) 캐나다 총리가 정계 입문 전인 2001년 교사로 재직했던 사립학교의 연례 만찬 행사에서 얼굴과 목, 손을 짙은 갈색으로 칠하고 알라딘으로 분장한 채 웃음을 짓고 있다. 사진이 공개되자 그는 사진 속 인물이 자신이라고 시인하며 과거 행적을 사과했다. 타임 홈페이지 캡처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18년 전 얼굴과 몸에 짙은 갈색 분장을 하고 찍은 사진이 공개돼 ‘인종차별’ 논란에 휘말렸다. 그는 실수를 인정하고 즉각 사과했다. 여성·흑인 등 소수자를 위한 진보적 가치를 내세우며 ‘캐나다의 오바마’로 불리기도 했지만 최근 여성단체로부터 ‘위선자’라고 비판받는가 하면 ‘인종차별’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다음 달 21일 예정된 총선에도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18일(현지시간) 트뤼도 총리가 정계 입문 전인 2001년 한 파티에서 찍힌 사진을 보도했다. 사진 속 트뤼도 총리는 얼굴과 목, 손을 짙은 갈색으로 칠한 채 흰색 터번을 둘렀다. 당시 29세였던 그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사립학교 웨스트포인트그레이 아카데미 교사로 재직하며 ‘아라비안나이트’를 주제로 열린 연례 만찬 행사에서 ‘알라딘’으로 분장했다.

문제는 얼굴을 검게 하거나 갈색으로 분칠하는 것이 인종차별 행위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흑인 인권운동 이후 이 같은 분장은 인종차별로 치부돼 금기시됐다. 이 파티에는 학교 교직원과 행정가, 학부모가 참석했지만 피부를 갈색으로 칠한 사람은 트뤼도 총리뿐인 것으로 전해졌다.

트뤼도 총리는 사진 속 인물이 본인이라는 점을 시인하며 곧장 사과했다. 그는 이날 유세 현장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는 (갈색 분장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더 잘 알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또 해당 사진이 인종차별적인 사진이라고 인정하면서 당시에는 이를 인종차별적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야권에서는 비판이 쏟아졌다. 엘리자베스 메이 녹색당 대표는 “사진에 나타난 인종차별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며 “그는 (인종차별로 인한) 피해를 준 것을 사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크교도로 터번을 쓰고 다니는 저그미트 싱 신민주당 대표도 이 사진에 대해 “모욕적”이라며 “대답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비판했다.

트뤼도 총리는 2015년 총리 취임 당시 내각을 남녀 동수로 구성하고 사회적 소수자를 장관에 임명하면서 “지금은 2015년이잖아요(Because it's 2015)”라고 말하는 등 특히 그간 소수자를 향한 차별 철폐, 다양성 확대 등에 앞장서 왔다. 하지만 최근 그의 진보적 이미지에는 금이 가고 있다. 트뤼도 총리와 그 측근들이 건설업체의 뇌물 사건 수사와 관련해 검찰에 압력을 가했다는 폭로가 나왔고, 또 이를 고발한 여성 장관 2명을 해임해 ‘위선자’ ‘가짜 페미니스트’라는 비난을 샀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