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경기·인천에 IT와 소프트웨어 기업의 약 90%가 몰려있다. 대학생이 서울에서 졸업하면 93%가 서울에 남고, 지방은 53%만 지역에 남는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서 먼 지역들은 4차 산업혁명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나.”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16일 오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 B103호에서 열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말하다-일자리 창출기반 지역발전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주제발표자로 나선 김 교수는 산업 기반이 약한 지방은 인프라 부족·인력 유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지역 맞춤형 4차 산업혁명 전략이 시급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은 이미 우리의 산업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향후 기업들의 생존 여부가 여기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일례로 지난해 시가 총액이 높은 글로벌 기업들에는 정유회사나 자동차 회사가 아닌, 디지털화에 성공한 미국의 애플, 아마존, 구글과 중국의 텐센트, 알리바바 등이 차지했다.
김 교수는 현 산업 흐름에 대해 “내가 원하는 상품을,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형태로 제공받는 ‘제품의 서비스화’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라며 “과거에는 불가능했지만, 디지털 기술이 이를 가능케 했다”라고 진단했다. 이젠 단순히 신발이라는 상품을 구매하는 것을 넘어서, 내가 디자인한 신발을 내일 집에서 배송받는 서비스도 가능한 시대다.
김 교수는 4차 산업혁명으로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자동차의 패러다임이 자율 주행 등으로 바뀌고 있다”면서 “자동차 산업이 AI 등 IT와 결합해 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미래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수직 계열 구조가 기술과 창의력을 보유한 기업들의 수평적 협력·연합 등으로 변화해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산업 흐름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지방의 위상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우려다. 일자리 등 산업 기반은 앞으로 중앙에 더욱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기술개발투자와 인력 모두 수도권·충청권에 몰려 지역편중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이곳에 약 80% 이상이 집중된 상태다. 인력 유출도 심각한 문제다. 수도권 대졸자의 지역 잔존율은 92.7%에 달하지만 강원도 등 지방은 50%에 불과하다. 아울러 김 교수는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4차 산업혁명 지역 혁신 방안들도 부족한 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김용진 교수는 “지역 상황에 맞도록 특성화된 것이 전무하고, 겹치는 것들이 50% 이상”이라며 “해외특허 및 기술료가 매우 미흡하고, 정부의 지원을 받은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성장성 또한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개별 기업을 지원하는 것보다도, 지역정부·대학·기업 등 지역 협업 네트워크를 구축해 이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인력수급 체계 효율화 ▲건전한 성장환경 조성 ▲상생 생태계 조성 ▲협력적R&D 체계구축 ▲글로벌 역량 향상 등을 제시했다. 산학협력 등 지역 네트워크 통해 인력 유출을 막고, 인프라 중심 지원과 지역 내 협업 브랜드 구축으로 지역 맞춤형 4차 산업혁명 전략을 짜자는 것. 최종적으로 지방 정부의 역량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다.
김 교수는 미국 팔로알토 지역의 구글, 포틀랜드의 나이키, 시애틀과 스타벅스, 프랑스의 와인 산업 등을 예로 들기도 했다. 그는 “지역 네트워크가 지역자원을 통합·활용하는 지역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면서 “아울러 중앙 정부가 아닌, 지역 주도형으로 정책 거버넌스를 확립하고, 지역 고유의 문화·정체성에 기반한 지역 산업전략을 실행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농·어촌 지역 소멸 다가와…첨단기술 적용한 新 생태계 절실”
주제발표 이후 이어진 토론회에서는 조선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성과일자리정책과장, 정재한 한국지역정보개발원 디지털지역혁신부 책임연구원, 이경환 전남대학교 지역·바이오시스템공학과 교수가 패널로 참석해 지역 일자리를 놓고 여러 방안들을 논의했다. 패널토론은 정성훈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교수(한국경제지리학회장)가 좌장을 맡았다.
토론에서는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첨단기술을 적용한 새로운 생태계가 농·어촌 등에 필요하다는 분석이 제시됐다.
이경환 교수는 “농·어촌 지역이 현재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며 “초고령화 사회로 노동인구가 없어 지역쇠퇴, 지역소멸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사회적 수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 농·어촌 산업의 문제를 경제적으로 분석해 발전시킬 수 있는 제도와 정책 필요하다”며 “첨단기술을 적용해 새로운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 디지털변혁을 통해 기본적인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 교수는 “새로운 생태계 만들어지면 젊은 노동력이 유입될 수 있는 통로가 생긴다”며 “우리나라도 농업 등 수출 산업을 키우기 위해 농업 첨담기술 적용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날 토론회 방청객에서는 그간 지방 농·어촌 발전을 위한 정부 정책이 미흡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방청객은 “IT 관련 산업에 관한 정책은 많지만 지역에서 소외되고 있는 농·어촌을 어떻게 발전시킬지에 대한 정부 가이드라인은 제시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에 조선학 과장은 “아무래도 기존 혁신이 없던 분야라 거쳐야할 단계가 많아 타 제조업보다 진도가 늦게 나간 부분이 있다”며 “이런 부분을 간과하기보다 지속해서 지켜보고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답변했다.
지방자치단체 자체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재한 연구원은 “냉정하게 진단해보면 중앙정부에서 손을 놓으면 지자체 스스로 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지자체를 중심으로 한 기반과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 연구원은 “AI나 빅데이터 등 신기술을 활용한 4차산업혁명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양질의 데이터가 풍부하게 갖춰져야 하는데 현재 지방자치단체에는 그러한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중앙정부 차원에서 지자체가 양질의 데이터를 만들고 축적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정 연구원은 “중앙부처는 데이터의 표준(종류, 유형 등)을 제시하고 지자체는 표준에 따라 데이터를 생성 및 수집하며 나아가 표준외에 지자체 특성별로 필요한 데이터들은 지자체 스스로 생성, 수집 및 활용을 할 수 있도록 정책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민경 한전진 쿠키뉴스 기자 ist107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