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식으로 간편식으로… 한가득 정성, 한국인 입맛 잡다

입력 2019-09-19 20:46
동원F&B의 ‘양반죽’을 그릇에 옮겨 담아 상차림한 모습이다. ‘양반죽’으로 28년 동안 상온죽 시장 1위를 지켜오고 있는 동원F&B는 지난 7월 파우치죽 4종을 출시해 시장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동원F&B 제공·게티이미지

죽을 집에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쌀은 잘 씻어서 충분히 불리고, 채소 고기 해산물 등의 건더기 재료는 먹기 좋게 다져둔다. 오래 끓여서 깊은 맛을 내는 육수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잘 불린 쌀을 달달 볶아서 어느 정도 익힌 뒤, 육수를 붓고 속재료를 넣어 약한 불에서 뭉근하게 오래 끓여야 한다. 냄비에 들러붙지 않게 불 앞에서 한참을 저어줘야 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죽 한 그릇을 맛있게 끓이는 데는 이렇게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먹기는 쉽지만 만들기는 까다로운 것, 우리나라 ‘슬로푸드’의 대표주자인 죽이다.

1992년 동원F&B가 출시한 ‘동원참치 죽’. 동원F&B 제공

죽은 집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진지는 오래다. 1992년 동원 F&B가 ‘동원참치 죽’을 출시하면서 간편식 가운데 하나로 죽이 등장했다. 웰빙 열풍이 불던 2001년 동원F&B는 ‘양반죽-전복죽’을 내놨고 출시된 첫 해 5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후 소고기죽, 야채죽, 호박죽, 단팥죽 등 다양한 종류의 죽이 출시됐고 20여종의 제품이 나오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죽전문점도 속속 등장하면서 ‘죽’은 외식업계에서도 한 축을 차지하게 됐다.

죽 시장은 이렇게 시판죽 시장과 죽전문점 시장의 두 갈래로 나뉘어 성장과 정체를 거듭해왔다. 최근 상황은 어떨까. 올해 국내 시판죽 시장은 지난해(1100억원 규모)보다 배 가까이 성장해 2000억원 규모로 확장될 것으로 예상된다. 간편식으로의 죽 시장은 시장을 개척한 동원 F&B ‘양반죽’이 이끌고 있는 가운데 CJ제일제당 ‘비비고죽’, 오뚜기 ‘오뚜기죽’, 본아이에프 ‘아침엔본죽’ 등 후발주자들이 경쟁하며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시장규모가 급격히 커지는 데는 ‘경쟁’이 한 몫 했다. CJ제일제당이 지난해 비비고 파우치죽을 내면서 동원F&B를 맹추격해왔다. 그동안 어디서든 먹기 편한 용기죽만 만들어왔던 동원은 28년간의 노하우를 담은 파우치죽을 지난 7월 출시하면서 시장 확장을 거들었다. 용기죽이 주류였던 죽시장은 파우치죽으로 외연을 넓히면서 다양성도 확보하게 됐다. 소비자들도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다양한 죽을 맛볼 수 있게 됐다.

시장에 새롭게 등장한 파우치죽은 월 20억원 규모 수준이었으나 ‘양반 파우치죽’이 가세하면서 월 45억원 규모로 2.5배가량 성장했다. 이런 기세라면 올해 상온 파우치죽 시장은 연간 560억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양반죽이 2001년 처음 업계 1위로 올라선 이후 19년 동안 죽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시장을 선점했다는 점 외에도 ‘맛’으로 승부를 봤다는 분석이 많다. 국민일보가 전문가들과 함께 시중에서 판매되는 식품을 평가하는 ‘국민컨슈머리포트’(국민일보 3월 18일자)에서도 전복죽을 비교한 결과, 양반죽이 1위를 차지했었다.

양반죽이 집에서 갓 만든 죽 맛을 낼 수 있는 것은 ‘저으며 가열하는 공법’이라는 오랜 노하우에서 비롯됐다. 전통적인 죽 조리방식에서 착안한 이 공법은 쌀알과 원재료의 손상을 최소화하고 식감을 최대한 살린다. 미리 죽을 만든 뒤 용기에 담는 방식은 쌀알이 떡처럼 뭉쳐서 질감이 떨어지고 추가 열처리 과정에서 쌀알이 뭉개지게 된다.

양반죽은 갓 요리해낸 죽의 식감을 유지하기 위해 저으며 가열하는 공법을 기존의 양반죽과 새로 출시한 파우치죽에도 모두 적용하고 있다. 쌀과 각종 원물재료를 파우치에 함께 넣고 한 번에 끓여낸다. 열처리를 최소화해 갓 지은 듯한 식감을 구현해낸다. 특수 제작한 교반 설비가 집에서 죽을 저어주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줘 쌀알이 뭉치지 않고 살아있다는 게 특징이다.


양반죽은 지난해 연간 4100만개의 판매고를 올렸고, 이로써 누적 판매량 5억개를 넘어섰다. 양반죽 판매량은 최근 3년 동안 연평균 30%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파우치죽까지 더해진 올해는 한 해 판매량이 6000만개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동원F&B는 본격적으로 죽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다. 용기죽 위주로 판매하다가 파우치죽을 선보였고 이어 ‘프리미엄 용기죽’으로 다양화를 꾀하고 있다. 다음달 국산 고급 원재료를 일반 용기죽보다 배 이상 듬뿍 넣고 용량도 기존 용기죽(288g)보다 많은 403g으로 늘린 ‘명품죽’을 출시할 예정이다. 다음달 출시되는 명품죽은 전복죽과 백합죽 2종이고 향후 제품 종류를 늘려나갈 예정이다.

양반죽으로 죽 시장의 새로운 도약을 노리는 동원F&B는 지난해 8월 전남 광주공장에 약 3000평 규모의 양반죽 생산라인을 준공했다. 기존 제조공정보다 맛과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새로운 기술과 설비도 도입했다. 쌀알이 크고 식감이 좋고 당도가 높은 고급품종의 원재료 쌀로 품질을 높였고, 쌀이 깨지는 현상을 방지할 수 있도록 설비도 개선했다. 동원F&B의 주력인 참치를 활용한 진액으로 풍미를 살렸다. 전복, 야채 등의 원료도 식감을 살릴 수 있는 큼직한 형태로 담아냈다.

동원F&B 관계자는 “출시 이후 맛과 품질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며 죽의 가치를 높여온 뚝심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겠다”며 “지난해 진행한 신규 설비투자를 바탕으로 경쟁력 있는 신제품을 내고 다양한 마케팅 활동으로 죽 시장을 공략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