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선 관련 법 논의가 한창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민법 개정 방향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선 징계권을 완전히 삭제하는 안, 징계권은 그대로 두되 폭행, 상해 등의 범죄행위를 징계의 범위에서 제한하는 안 등이 제시됐다.
개정안이 딱 부러지게 정리가 안 되는 이유는 아직도 ‘체벌은 필요하다’는 국민 정서가 남아 있어서다. 보건복지부가 2017년 12월 4일부터 8일까지 전국 20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8.3%는 ‘사랑의 매가 상황에 따라 필요하다’고 답했다. 정부도 ‘예외적 상황’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장은 17일 서울 역삼동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한 인터뷰에서 “징계권의 완전한 폐지를 통해 아이에 대한 체벌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폭행 배제와 같은 단서조항으로는 체벌을 둘러싼 논란을 불식시키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장 관장은 “체벌을 금지해야 하지만 체벌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은데 정작 체벌을 받는 아이들의 인성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성인으로의 성장 발달을 해칠뿐 아니라 체벌의 훈육적 효과도 없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부모는 ‘아이가 잘 돼라’고 때리는데 맞는 아이는 자신이 왜 맞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는 “체벌이 일시적으로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멈추게 하지만 오히려 아이가 ‘폭력을 사용해야 한다’고 배우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가정 내 체벌이 아이의 심각한 비행에 따른 것도 아니다. 장 관장은 “부모 몰래 5000원을 썼다는 이유로 아빠에게 맞아 얼굴, 다리, 등에 멍이 심하게 든 9살짜리 여자아이가 신고됐다”며 “말대답을 한다, 빨리 일어나지 않는다,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3년간 반복적인 체벌, 즉 아동학대가 이뤄졌다”고 했다.
청소년기에 체벌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장 관장은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학대 건수가 많다”며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가 자기 의견을 말하기 시작하는 게 영향을 미친 것인데 부모는 아이가 말대꾸한다고만 생각해 체벌한다”고 했다. 부모 입장에선 생각지도 못하게 아동학대로 신고되는 격이라고 했다.
가정 내 체벌이 더 심각한 이유는 가정 특유의 폐쇄성에 있다. 아동학대로 신고된 이력이 있는 가정을 아동보호전문기간과 경찰이 들여다보려 해도 부모가 거부하면 속수무책이다. 강제력이 동원되려면 응급성, 현장성이라는 요건이 갖춰져야 하는데 이는 아동이 학대받던 도중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는 걸 의미해 현실성이 떨어진다. 장 관장은 “지금으로선 아이를 양육하며 겪는 어려움을 돕겠다는 식으로 접근해 부모의 협조를 구하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가정 내 체벌의 근본적 원인은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부모의 태도에 있다고 장 관장은 꼬집었다. 장 관장은 “전쟁을 경험한 나라다 보니 뭔가 빠르고 급하게 일을 처리하려 하고 이를 위해 일정한 행동의 틀을 부모가 갖고 있는 것 같다”며 “이 틀을 아이에게 주입하는 경향이 우리나라 부모에게서 보인다”고 했다. 음식이든 옷이든 아이에게 선택권을 줌으로써 아이의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서구 국가와 다르다는 설명이다.
학대행위자 중 친부모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도 이와 연관 있다고 장 관장은 진단했다. 지난해 아동학대로 판정된 2만4604건 중 73.5%가 친부모에 의한 것이었다. 그는 “친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학대에) 노출되는 정도가 심하고, 또 친부모이기 때문에 더 쉽게 아이에게 손을 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아동학대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개선되면서 친부모에게 학대당하는 아이가 더 많이 발견되는 걸 체감한다고 장 관장은 전했다.
전체 아동학대 건수 중 82.0%에 해당하는 2만164건은 ‘원가정 보호 지속’으로 처리됐다. 장 관장은 “법적인 의미의 아동학대로 인정되지 않는 게 80%가 넘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고 했다. 가벼운 학대라도 부모와 아이를 분리한 뒤 부모교육 후 가정으로 아이를 복귀시켜야 하는데 현재는 그런 조치가 없다. 가정으로 돌아간 아동에게 재학대가 가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보완이 필요하다고 그는 역설했다.
한편으론 아이에게 가장 안전한 장소가 가정이라는 원칙도 지켜져야 한다고 장 관장은 강조했다. 그는 “아이들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길 원한다”며 다만 그 전제조건으로 “부모교육을 통해 가정을 개선하고, 아이가 가정에서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아이를 빠르게 가정에서 빼낼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 관장은 “기관에서 부모를 대상으로 잘못된 훈육 방법을 고치기 위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데 엄마, 아빠가 달라지면 이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도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다”며 “부모의 체벌이 아이의 자기방어 기제를 강화해 더 큰 갈등을 일으킨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