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마음 안들면 영어로 호통… 김현종 직설화법 우려 목소리

입력 2019-09-18 04:03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외교부와 국가안보실 간에 충돌이나 갈등이 심하지는 않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김현종(사진)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언쟁한 사실이 알려지자 17일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진화에 나서며 내놓은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일을 하다보면 조금씩 이견이 있을 수는 있지만 같이 일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은 전혀 아니다”며 “지금도 외교부와 안보실 사이에는 협의와 논의들이 굉장히 활발히 이뤄지고 있고, 안보실은 외교부 없이 외교부는 안보실 없이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 장관과 김 차장이 갈등한다는 얘기는 여권에선 꽤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강 장관이 전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 당시 김 차장과 다툰 적 있지 않으냐’는 질의에 “부인하지 않겠다”고 답하면서 그간의 소문이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김 차장은 현재 차관급으로 강 장관보다 직급이 낮다. 하지만 김 차장은 10년 전 노무현정부에서 통상교섭본부장(장관급)을 지냈고, 문재인정부 초대 통상교섭본부장도 역임했다. 그는 미국 변호사 출신 통상 전문가지만, 지난 2월 안보실 2차장에 임명된 후 각종 외교 현안의 전면에 나서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김 차장이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정의용 안보실장의 역할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다.

김 차장은 특히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 등 한·일 갈등 상황에서 전면에 나섰다. 그는 한·일 갈등이 한창이던 7월 중순 미국을 다녀온 뒤 “중재를 요청하러 간 것이 아니라 우리 입장을 객관적인 차원에서 설명하고 미국의 입장을 듣고자 한 것”이라며 “무언가를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순간 ‘글로벌 호구’가 된다”고 말했다. 또 “노무현정부 시절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이 제2의 한·일 경제병합이 될 것이라고 보고 (내가) 이를 깼다”고 말하기도 했다. 직설적이고 자신만만한 태도가 명쾌하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지만,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외교 문제를 다루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김 차장은 보고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성으로, 영어를 섞어 직원들을 다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김 차장의 직설화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은 김 차장이 강 장관의 ‘상관 노릇’을 한다며 갈등을 부추기는 모양새다. 자유한국당 소속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김 차장에 대해 “기라성 같은 장관이나 외교관을 제쳐놓고 이 사람이 상전 노릇 하고 있다”며 “자신은 ‘미국을 잘 안다, 요리할 수 있다’고 하는 것 같은데 오히려 미국 조야에서는 (그가) 한·미동맹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 개각을 앞두고 김 차장의 외교부 장관 하마평이 돌았을 때는 외교부 직원들이 전전긍긍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강 장관이 2017년 취임 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강조하면서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아진 상황인데, 성과를 강조하는 터프한 스타일의 김 차장이 장관으로 올 경우 워라밸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강 장관과 김 차장이 지난 4월 다툰 것도 김 차장이 문건의 맞춤법을 문제 삼아 외교부 국장들을 몰아붙인 것이 발단이었다. 청와대와 외교부 주변에서는 양측 갈등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말이 많다.

임성수 이상헌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