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슨, 시위대 겁나 공동회견장 노쇼… 브렉시트 출장길 망신살

입력 2019-09-18 04:02
그자비에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가 16일(현지시간) 당초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자리로 마련된 빈 연단을 양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유럽연합(EU)과의 브렉시트 협상 타결을 자신하며 유럽 방문길에 나섰다가 굴욕만 맛봤다. 반(反)브렉시트 시위대를 피하려 룩셈부르크 총리와의 공동기자회견에 불참하면서 조롱의 대상이 됐다. 자국 내에서 ‘노딜 브렉시트 방지법’ 투표 등을 통해 수차례 브렉시트 강행에 제동이 걸리며 체면을 구겼던 존슨 총리는 EU 협상에서도 망신을 사고 있다.

영국 BBC방송, 가디언 등은 16일(현지시간) 존슨 총리가 그자비에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에게 굴욕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존슨 총리는 이날 브렉시트 협상을 위해 룩셈부르크를 방문해 베텔 총리와 회동했다. 양 정상은 회담 후 총리궁 안뜰에서 공동기자회견을 할 예정이었지만 존슨 총리는 나타나지 않았고, 베텔 총리만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섰다.

베텔 총리는 존슨 총리의 빈 연단을 양손으로 가리키며 기자회견에 불참한 존슨 총리를 비꼬았다. 그는 “시위는 민주주의의 권리다. 서로 소통하고 듣는 것도 중요하다”며 존슨 총리가 시위대를 의식해 기자회견에 불참했다고 전했다.

앞서 존슨 총리는 룩셈부르크 측에 시위대가 없는 총리궁 건물 내부로 기자회견장을 옮기자고 제안했다. 이날 총리궁 인근 광장에서는 반브렉시트 시위대가 오전부터 “꺼져라 보리스”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룩셈부르크 정부는 내부에 기자회견을 열 정도의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영국 총리실은 일부 언론사를 추려 기자회견을 진행하자고 했지만 룩셈부르크 측은 불공평하다며 이 제안도 거부했다.

베텔 총리는 이 자리에서 존슨 총리의 브렉시트 캠페인이 거짓말로 이뤄졌다고 비난하며 브렉시트 협상은 ‘악몽’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당신(존슨 총리)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 미래를 인질 삼아선 안 된다”며 “이제 일은 존슨 총리에 달렸다”고 말했다.

베텔 총리는 또 “현재 구체적인 제안이 없다”며 “EU에는 단순한 말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존슨 총리가 브렉시트 핵심 쟁점인 ‘백스톱’(브렉시트 이후에도 영국을 당분간 EU 관세동맹에 잔류시키는 조치)을 폐기하는 대신 ‘특정 협약’을 맺을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구체적인 대책이 없다는 비판이다. 그러면서 “시간이 촉박하니 말 대신 행동으로 보이라”고 압박하며 “기존 탈퇴 협정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덧붙였다.

가디언은 “어떤 기준으로 봐도 홀로 존슨 총리의 자리를 비워둔 채 기자회견을 진행한 것은 이상한 풍경이었다”며 “룩셈부르크 총리의 분노는 EU 27개국 정상들이 영국이 나가길 바란다는 암울한 진실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브렉시트 찬성파인 대니얼 해넌 영국 보수당 의원은 트위터에 “룩셈부르크 총리는 기자회견이 아닌 사실상 반브렉시트 집회를 했다”고 존슨 총리 없이 기자회견을 한 베텔 총리를 비난했지만, 소셜미디어 등에는 존슨 총리가 공동기자회견이 무서워 달아났다고 조롱하는 글과 사진이 넘쳐났다.

공동기자회견에 나서지 않은 존슨 총리는 영국 대사관으로 자리를 옮겨 일부 방송사들과만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소음 때문에 우리의 요점은 흐려졌을 것”이라며 기자회견을 취소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백스톱의 대안을 찾기 위한 많은 움직임이 있었다”며 “우리는 지금까지 논의한 작업의 속도를 높일 단계에 와 있다”고 주장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