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고 차베스(사진)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2000년대 중반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와의 대립 과정에서 자국 고위 군부 관료들에게 “콜롬비아 마르크스주의 게릴라 세력과 협력해 미국 사회에 코카인을 범람시켜라”고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일(현지시간) 이 같은 정황이 명시된 뉴욕남부지검 문건을 입수해 보도했다. 해당 문건이 인용하는 베네수엘라 대법원 판사 출신 엘라디오 아폰테의 말에 따르면 차베스 전 대통령은 2005년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의 도움을 받아 미국 사회에 코카인을 대량 유통시킬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고위관료들을 소집했다. 2012년 미국으로 도피한 아폰테는 미 마약단속국(DDA)에 “차베스는 당시 회의에서 코카인을 미국 사회에 뿌리는 것을 포함해 미국과 사투를 벌이기 위한 정책 목표들을 촉진하라고 관료들을 압박했다”고 진술했다.
미 검찰은 올해 초 스페인 법원에 차베스정권에서 군정보 당국을 이끌었던 우고 카르바할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이 문건을 작성했다. 미 당국은 2008년 마약 밀매 혐의로 카르바할을 기소했는데, 숨어지내던 그가 지난 4월 스페인에서 붙잡히자 범죄인 송환을 요청하기 위해 차베스의 획책을 설명한 문건을 작성한 것이다. 차베스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카르바할은 당시 회의에 참석한 고위급 관료 중 하나였다.
이 문건을 최초 입수해 보도한 스페인 언론 엘 문도는 “차베스 전 대통령과 베네수엘라 핵심 지도층은 콜롬비아에서 베네수엘라를 거쳐 미국으로 유입되는 코카인의 이동을 수월하게 만들기 위해 협력했다”고 전했다. 차베스정권은 FARC를 동맹군으로 포섭하기 위해 마약 수익을 나누는 한편 이들 반군에게 무기를 직접 제공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미 검찰은 “베네수엘라 당국의 획책으로 미국 사회에 마약 밀매가 크게 활성화됐다”고 주장했다. 실제 카르바할의 기소장에는 “‘태양의 카르텔’(베네수엘라 군부가 운영하는 마약사업 카르텔)의 목표는 코카인을 대미항전을 위한 ‘무기’로 사용하는 것이었다”며 “약물이 광범위한 사회적 폐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라고 적시돼 있다. WSJ는 “차베스 전 대통령이 국제 마약 밀매 유통망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처음으로 그 윤곽이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차베스 전 대통령은 2013년 사망했지만, 미 당국은 베네수엘라의 현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에서 요직을 맡고 있는 차베스 측근 인사들이 당시 음모에 관여했다고 지목하고 있다. 차베스정권에 이어 독재정치를 이어가고 있는 마두로정권 사이의 연관성을 가려내 마두로정권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