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캠페인] ‘쓰레기 마을’에 싹튼 희망… 빈민가 아이들 “꿈이 생겼어요”

입력 2019-09-18 00:05
이은옥 선교사가 지난달 28일 인도 콜카타 다빠지역 쓰레기마을에 거주하는 어린이를 씻겨주고 있다.

인도 콜카타의 다빠 지역은 인도 사람들도 들어가길 꺼리는 곳이다. 코를 찌르는 악취, 정비되지 않은 도로, 마약·알코올 중독자들로 인한 높은 범죄율 등이 주요인이다. 이런 곳에도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는 있다. 바로 콜카타 최대 규모의 쓰레기 하치장이다.

지난달 28일 찾은 이곳은 이른 아침부터 ‘쓰레기 산’ 주변에 쪼그려 앉아 쉼 없이 뭔가를 찾는 이들로 붐볐다. 입구에서 옥수수를 구워 파는 조나스 빠리(40)씨는 “하루 수백 대의 덤프트럭이 쓰레기를 쏟아낸다”며 “이곳 사람들에겐 쓰레기 더미 속 유리병 플라스틱 신발 등이 보물”이라고 말했다.

오전 8시가 되자 하치장 입구에 인도어린이교육선교회(GNCEM·Good News Children Education Mission) 글씨가 새겨진 노란색 버스가 도착했다. 인근에서 삼삼오오 모여든 아이들이 버스에 올라탔다. 힘차게 출발한 버스는 마을을 돌며 서너 곳에서 아이들을 더 태웠다. 금세 만원이 된 버스에선 한국어 찬양이 울려 퍼졌다.

“예수님 찬양, 예수님 찬양, 예수님 찬양합시다.”

앙증맞은 율동까지 곁들여 가며 영어 인도어로 찬양 메들리가 이어지는 사이 버스가 하띠바간교회에 도착했다. 교회 마당에서 기다리던 기대(기아대책)봉사단 이은옥(53) 선교사가 반갑게 아이들을 맞았다.

“천국열차 잘 타고 왔어요? 이제 에덴동산에 들어가 봅시다.”

이 선교사의 지휘 아래 4명의 스태프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악취가 밴 아이들의 옷을 벗기고 마당 한편에 마련된 목욕장으로 인도했다. 향긋한 거품이 몸 구석구석을 훑는 동안 발가벗은 아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콜카타에서 29년째 어린이선교사역을 하는 이 선교사는 “이 동네 아이들이 자다가 오줌을 싸도, 씻거나 옷을 갈아입지 않고 뛰노는 모습을 보면서 ‘일단 씻기고 먹이고 입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고민 끝에 시작한 사역이 빈민가 아이들을 한곳에 모아 돌보는 ‘모바일 스쿨’이다.

기아대책 ‘회복’ 캠페인을 통해 현장을 찾은 노윤식(주님앞에제일교회) 목사가 다스빠라학교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선교팀이 준비한 새 옷을 입고 나란히 앉은 아이들 앞에 기아대책 ‘회복’ 캠페인을 통해 이곳을 찾은 노윤식(주님앞에제일교회) 목사가 나섰다.

“우리가 몸을 깨끗이 씻는 것처럼 영혼도 깨끗이 씻어야 해요. 우리 죄를 씻어주신 예수님의 피를 꼭 기억하세요.”

노윤식 목사가 다스빠라학교 학생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면서 인사를 나누는 모습.

메시지를 전한 노 목사는 아이들 앞에 놓인 컵에 손수 우유를 따라주며 빵을 나눠줬다. 이 선교사는 “매일 70~80명을 데려오는데 이곳 아이들은 부모가 급사하거나 가출하는 등 가정환경의 변수가 많아 늘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10여년 전만 해도 쓰레기 매립지였지만 이 선교사가 뿌린 희망의 씨앗이 풍성한 열매를 거두고 있는 곳도 있다. 다빠로부터 15㎞ 정도 떨어진 다스빠라학교(CDP센터)다. 3~17세 학생 910명이 다니는 이 학교에선 사각지대 없는 무상 보육 교육이 이뤄지고 있었다. 두 아이의 학부모인 트리샤 돌루이(34 여)씨는 “인근 학교보다 교사 수준이 높고 바이올린 피아노 등 지역 내 부유층 자녀들만 배울 수 있는 악기도 교육받을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했다.

다스빠라학교 전경.

난민 밀집 지역이었던 이곳은 다스빠라학교가 들어선 후 시장 병원 버스정류장이 잇따라 세워지며 살기 좋은 동네로 변모해 가고 있다. 학교 교장이자 이 선교사의 남편인 수빌 로이(58) 목사는 “1996년 처음 문을 연 뒤 1~2년 만에 재학생 300명을 넘어섰고 학생이 많아지면서 운영에 고민이 커졌는데 2012년 기아대책을 만나면서 사역에 날개를 달았다”고 소개했다.

노윤식 목사(가운데)가 지난달 28일 이은옥 선교사(오른쪽), 수빌 로이 목사와 함께 고아원을 방문해 복음을 전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기아대책의 협력으로 CDP(아동개발사업) 지원이 가능해졌고 지원 아동에게는 교복 신발 가방이, 가정엔 모기장과 우산 등이 전달된다. 학부모 대다수가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상황에서 부모개발프로그램(PDP)은 양육 환경을 구축하는 울타리가 돼준다.

이날 학교에선 재봉 수업을 이수한 어머니들의 수료증 수여식이 열렸다. 바로띠 딘다(32)씨는 “재봉틀로 옷을 만들어 팔면 가사도우미로 버는 소득의 3배 정도를 벌 수 있다”면서 “아이가 학교에서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고 교회에 나왔는데 지금은 가족 모두 하나님을 믿는다. 모든 게 주님의 축복”이라며 웃었다.

현장에 동행한 박재범 기아대책 서울네트워크 부문장은 “교육을 통한 다음세대 양육은 가정 복음화의 중요한 통로”라며 “떡과 복음을 함께 전하는 게 기아대책 사역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허허벌판 위 영아원 하나로 시작한 사역은 정규학교 9곳, 영어학교 6곳, 보육원 2곳, 모바일 스쿨 2곳에서 총 3500여명을 보듬는 현장이 됐다. 유급 직원만 120명인데 대부분이 CDP센터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이들이다. 이 선교사는 “사랑과 위로를 경험한 이들이 ‘사랑을 전하는 자’로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감격스럽다”고 했다.

이날 오후 찾아간 미스뚜 루따(11·여)의 집에선 어둠 속 희망의 빛줄기를 엿볼 수 있었다. 대나무를 엮어 만든 6㎡(2평) 남짓한 집은 하루에도 3~4차례 단전이 돼 촛불로 실내를 밝히고 있었다. 5000루피(약 8만5000원)로 한 달을 살아가야 하는 집에서 자녀 교육은 사치였다. 어머니 쇼힐리 루따(38)씨는 “기아대책 CDP 지원을 받기 전까진 딸이 교과서 한 권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의사가 돼 아픈 사람을 돕는 꿈을 품고 산다”고 했다.

잠시 후 미스뚜 머리에 손을 얹은 노 목사의 기도가 어둠을 밝히듯 퍼져나갔다. 노 목사는 “20년 전 세계한민족복음화협의회(총재 노태철 목사) 인도복음화성회 주강사로 콜카타에 방문했을 때 이 선교사의 어린이교육선교 현장을 처음 마주했다”며 인연을 소개했다.

그는 “당시 동행했던 부친 노태철 목사님의 결단으로 헌금 1만 달러를 전한 것이 밀알이 돼 보육원과 기숙사 건립으로 이어졌다”며 “복음화율 3%에 불과한 이 땅이 하나님 나라로 온전히 세워지는 그 날을 위해 한국교회의 기도와 후원이 이어지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콜카타(인도)=글·사진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