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도 시민도… 대구·경북 ‘남성 설거지’ 붐

입력 2019-09-17 04:07

“앞으로 명절연휴 설거지는 남자들이 책임지고 합시다.”

지난 추석연휴 기간 동안 경북도청에는 때 아닌 ‘설거지 열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이철우(사진) 지사가 제안한 ‘경상북도 설거지 릴레이 캠페인’이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끌어내면서 핫이슈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지사는 추석연휴가 시작되기 전인 지난 11일 페이스북에 “명절 기간 주부들에게 집중되는 가사노동의 수고로움을 덜어드리자”며 본인이 직접 설거지 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고 설거지 릴레이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지사는 바로 윤종진 행정부지사, 전우헌 경제부지사, 김장호 기획조정실장 등 경북도 간부 공무원 세 명을 다음 참여자로 지목했고, 세 사람 역시 각각 세 명씩을 참여자로 지목했다. 이번 캠페인은 지목을 받은 사람이 설거지 인증샷을 올리고 다음 참여자 세 명을 지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지사로부터 시작된 캠페인은 수십 차례 지목이 이어지면서 경북도내 시·군은 물론 대구시까지 확산됐다. 연휴가 끝난 16일 현재까지 이 릴레이에 참여한 경북도민과 대구시민은 1000여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윤종진 경북도 행정부지사는 “추석날 아침 설거지는 난생처음이라 아내도 낯설어 했다”며 “작은 실천이지만 명절 문화를 바꾸는 밀알이 됐으면 좋겠다”는 글과 함께 설거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윤 부지사로부터 지목받은 이상길 대구시 행정부시장도 설거지 릴레이에 동참했다. 이 부시장은 “저희 가정은 가사분담이라는 개념보다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 닥치는 대로 집안 일을 해야 돌아가기 때문에 설거지를 특정인의 일로 생각하고 하려니까 어색하다”고 말했다.

조달흠 안동시의원은 “집안 청소는 종종 해왔지만 명절에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 하기는 처음이었다”며 “기회가 되면 자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동수 안동문화원장(진성이씨 치암 종손)도 “마당 쓸기, 방청소는 해봤지만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은 금기사항이라 설거지 경험은 처음”이라며 “앞으로 명절 때는 설거지를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처 지목받지 못한 경북도의회 간부들은 뒤늦게 릴레이 소식을 전해 듣고 민인기 사무처장 주관으로 자체 캠페인을 벌였다. 이 지사는 “말로만 변하자고 외치기보다 솔선수범 차원에서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됐다”며 “남자가 설거지를 맡는 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작은 변화부터 시작하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경북도는 16일 설거지 릴레이 캠페인에 참여한 사람들이 SNS에 올린 인증샷을 대상으로 콘테스트를 열어 ‘추석 설거지 대상’을 선정했다.

안동=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