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밀알선교단이 세워진 건 1993년 6월이었는데 그 과정이 좀 독특했다. 뉴욕은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깝고 자주 가는 곳이라 아는 사람도 많았으니 밀알이 세워진 것은 많이 늦은 셈이다. 거기에는 사정이 하나 있었다.
뉴욕밀알이 세워지기 3년 전 나는 당시 이철 목사님이 담임하던 뉴욕중부교회의 양정숙 집사님과 함께 뉴욕에 장애인 선교단체를 설립했다. 미국에 와서 필라델피아에 이어 두 번째로 세운 장애인 선교기관이었다. 90년 7월 뉴욕중부교회에서 설립예배를 드리고 단체의 이름을 ‘뉴욕국제장애인선교회’라 지었다. 양 집사님은 나를 만나면서 장애인선교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됐고 그 일을 준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뉴욕도 처음에는 밀알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 장애인선교회 앞에 그 지역 이름을 붙였다. 어차피 나중에 밀알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여러 지역에 있는 지부를 하나로 연합시킬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뉴욕의 경우 유엔본부가 있고 다른 도시보다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도시인 것을 감안해 특별히 ‘국제’라는 말을 붙였다. 정관 역시 다른 지부와 마찬가지로 밀알의 3대 목표와 정신을 그대로 포함해 후일 자연스러운 밀알의 연합에 대비했다.
하지만 설립 후 2년 뒤인 92년 6월 각 지역 지부가 워싱턴에 모여 미주밀알선교단으로 연합할 때 처음 계획과 달리 뉴욕국제장애인선교회는 참여하지 않았다. 당시 한국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분이 뉴욕국제장애인선교회 총무를 맡았는데 굳이 독자적 활동을 펼치길 원했기 때문이다. 결국 필라델피아, LA, 워싱턴 세 곳의 지부만 미주밀알선교단 이름으로 하나가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뉴욕국제장애인선교회는 밀알과 다른 나름의 특성을 형성해 갔다. 그러자 뉴욕의 많은 장애인과 지인들이 뉴욕에 다시 밀알을 세워줄 것을 요청해 왔다. 밀알은 밀알 나름대로 목표와 개성이 있으니 뉴욕 장애인을 위해서도 일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깊은 고민이 시작됐다. 그 타당성은 이해를 하면서도 국제장애인선교회를 창립한 사람으로서 같은 지역에 또 다른 장애인 단체를 설립하는 게 내키지 않았다. 고민하고 망설이다 몇 년의 시간을 보냈다.
고민 끝에 뉴욕밀알을 세우기로 결정한 건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 뉴욕에 있는 많은 장애인과 장애인 부모들이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해 왔다. 지속적으로 접수되는 실로 안타까운 사연들이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둘째, 대도시인 뉴욕에는 너무 많은 장애인이 있었다. 수요를 고려하면 장애인을 위한 단체가 더 생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셋째, 밀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목표와 사업 때문이었다. 이를 뉴욕에 있는 장애인들과도 나누고 싶었다.
93년 6월 뉴욕에서 자동차로 3시간쯤 걸리는 펜실베이니아 주 포코노에서 뉴욕밀알선교단 설립예배를 드렸다. 밀알 지부가 자기 지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설립예배를 드린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시 내가 출석하던 뉴저지안디옥교회의 정재득 장로님이 포코노에 아늑한 산장을 갖고 계셨는데 그곳을 사용한 것이다.
25일 저녁부터 시작된 설립예배에는 뉴욕에서 25명의 단원이 참석했고, 이를 축하해 주기 위해 워싱턴밀알에서 13명, 필라델피아밀알에서 5명의 단원이 참석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딱 맞다. 막상 내가 살던 뉴저지에는 내가 미국을 떠나기 직전에야 밀알을 세웠다. 그때까지 뉴저지에서 밀알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뉴욕이나 필라델피아, 워싱턴의 밀알로 연결해 후원토록 했다. 뉴저지밀알을 시작한 결정적 계기는 나와 같은 교회에 출석하던 한수진 자매였다. 그는 필라델피아와 뉴욕밀알에 후원도 하고 시간 날 때마다 열심히 봉사해오던 참이었다. 하루는 뉴저지에도 밀알을 세울 것을 내게 건의했고 본인이 앞장서서 봉사하겠다고 했다.
마침내 94년 7월 17일 수진 자매 자택에서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뉴저지밀알 설립예배를 드렸다. 내가 10여년의 미국 생활을 접고 6년 동안 살던 뉴저지를 떠나기 이틀 전이었다. 그 후 뉴저지밀알은 수진 자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발전을 거듭했다. 그해 가을 수진 자매의 오빠이자 뉴저지밀알 설립 전부터 미주밀알의 후원단원으로 활동하던 한종세 집사가 총무로 취임했다. 뉴욕에서 막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취업을 하려던 차에 나의 제안을 받고 밀알 사역자로 헌신한 것이다.
뉴저지밀알 설립예배 후 이틀 뒤인 19일 나는 뉴저지를 떠나 시카고로 갔다.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면서 시카고에 들러 그동안 여러 방법으로 준비해 오던 시카고밀알 설립행사를 하고 가기 위해서였다.
필라델피아밀알에서 봉사하던 양재영 집사를 시카고밀알 책임사역자로 파송해 준비하게 했다. 임택권(전 아신대 총장) 목사님이 담임하던 필라델피아연합교회에서 양 집사를 시카고 장애인을 위한 국내 선교사로 인정해 매월 재정을 지원해줬다. 24일 저녁 헤브론교회(송영걸 목사)에서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설립예배를 드렸다.
시카고를 떠나 한국으로 귀국하던 날, 미국에 세계 장애인선교의 전진기지를 세우겠다는 비전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이뤄진 것이 감사했다. 미국에 모두 6곳의 밀알 지부를 세우고 그 밀알 지부들을 연합한 미주밀알을 출범시켜 연방정부에 등록했다는 사실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격으로 다가왔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