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민세진] 추석 장보기 대란

입력 2019-09-17 04:02

추석 연휴 직전 일요일 오전,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20위 안에 대형마트 휴무일 관련 검색어들이 한꺼번에 포함되었다. 많은 가정에서 연중 가장 장볼 것이 많은 그 주말 일요일이 마침 의무휴업일이었다. 기초자치단체가 지정한 월 2회의 의무휴업일이 서울, 부산, 인천, 대전, 대구를 포함하여 대부분 지역에서 둘째 넷째 일요일로 같다 보니, 장보려다 당황한 사람들의 심정이 검색어에 드러난 것이다. 휴업일을 피해 토요일에 장본 사람이라고 상황이 많이 나은 것은 아니었다. 필자도 차례 지내시는 친정 부모님 장보는 것 도와드린다고 차를 몰고 대형마트로 갔다가 주차장에 진입하려는 차량 줄에 끼어 먼저 내린 부모님이 장을 다 보고 나오실 때까지 간신히 건물 한 바퀴 돌고 그대로 귀가했다. 그래도 깜박하고 그다음 날 장보러 갔으면 정말 난감할 뻔했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이런 전국적 혼란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이 도입된 것이 2012년이니 벌써 햇수로 8년째다. 의무휴업일이 있다는 것을 전 국민이 다 알 만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사는 게 바쁘고 규칙적으로 장을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불편함이란 적응되기 어려운 것이다. 더구나 주말은 맞벌이 가정에서는 외출해서 제대로 장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대체 수단이 있다. 필자는 언제 마지막으로 마트에서 장을 봤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인터넷 장보기에 익숙해졌다. 요일이나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생각날 때마다 살 것을 장바구니에 넣어놨다가 배송비 무료 조건을 채울 때 주문하면 되니 이렇게 신통할 데가 있나 감탄했다. 그나마 신선식품이나 배송시간이 좀 아쉽다 싶었는데 이제는 다음 날 새벽에 신선한 상태로 배달해주는 업체들도 있으니 삶의 질이 이만저만 높아진 게 아니다.

필자의 경우가 독특하지 않다는 것은 데이터로 드러난다. 유럽계 시장조사업체인 칸타르월드패널의 2018년 10월 발표에 따르면 신선식품을 포함한 생필품 구매에서 인터넷 장보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우리나라가 19.9%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2위인 중국(9.5%)의 배가 넘는 비중이고, 3년 전인 2016년 조사 결과 16.6%와 비교할 때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때문에 우리나라의 인터넷 장보기 비중이 높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겠지만 영향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쯤 되면 의무휴업일을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나 의문이 든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은 전통시장 등 지역상권 보호 취지로 도입되었는데, 대형마트가 불편해진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이나 동네 소매점으로 돌아갔다는 근거는 찾기 어렵다. 대형마트조차 매장 영업이 힘들어질 정도로 환경이 바뀌고 있는데 낡은 규제만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과 달리 돌아가는 것 같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늘리고 대형 복합쇼핑몰도 대형마트처럼 출점, 영업시간, 영업일수를 제한하겠다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유통산업발전법은 1997년 제정될 때만 하더라도 유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전에는 허가를 받아야 출점이 가능했던 대형마트에 대해 등록만 하면 되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법이었다.

그 배경에는 산지 가격과 소비자 가격의 격차가 큰 낙후된 유통산업의 현실이 있었다. 따라서 제정 당시 유통산업시책의 제1목적은 민간투자의 확대, 제2목적은 저비용구조 실현 및 물가안정의 도모였다. 이후 유통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그 결과 입법의 주요 목적을 달성하게 되었다. 이제는 국내가 비싸면 해외에 직접 주문하는 세상이니 20여년 전에 유통산업발전법이 제정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는 지금처럼 경쟁력 있는 유통환경을 누리게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던 유통산업발전법이 유통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현재 유통산업시책의 제2목적은 소비자 편익의 증진이다. 소비자의 편익이 어떻게 증진될 수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은가. 침묵하는 민심도 민심인 걸 알아주면 좋겠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