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적 이득 따라 ‘피의사실 공표’ 논란

입력 2019-09-16 04:09

여권과 야당·검찰이 충돌하고 있는 피의사실 공표 문제는 이번에 갑자기 불거진 게 아니라 정치권에서 오랫동안 정파적으로 악용돼 온 이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10년 전 ‘논두렁 시계’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다가 세상을 떠난 뒤부터 피의사실 공표 문제는 늘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검찰이 상대방을 수사하고 언론이 이를 보도할 때는 ‘국민의 알권리’라며 피의사실 공표를 용인했다. 반면 검찰의 칼끝이 자신들을 겨눌 때는 “피의사실을 공표해서는 안 된다”며 검찰과 언론을 비난했다. 여야가 내로남불 행태를 되풀이해 온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양승태 전 대법원장,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김성태(사진) 자유한국당 의원 자녀 채용 비리 등 보수 정권 관련 인사들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정보가 외부에 알려질 때마다 이를 인용하며 사건 관련자들을 비판했다. 한국당도 노 전 대통령, 환경부 블랙리스트, 조국 법무부 장관 의혹에 관한 피의사실 보도를 자신들의 정치적 공격 도구로 활용했다.

지난해 김성태 의원 딸의 KT 취업 특혜 의혹 사건이 불거졌을 때 한국당은 “검찰이 피의사실을 생중계하고 있다. 일방적 진술에다 공소시효가 지난 내용을 유포한 것은 아주 악질적”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민주당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2011년 김 의원이 직접 딸의 계약직 지원 서류를 KT 사장에게 전달했다는 진술이 나왔다”고 맞대응했다.

현 정권 환경부에서 산하기관 임원들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의혹인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는 공수가 바뀌었다. 민주당은 “검찰이 의도적으로 수사 상황 등을 공표하고 있다. 완전히 정치적 행위”라고 검찰을 저격했고, 한국당은 “철저한 수사로 부도덕한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고 맞섰다.

조국 장관 임명 정국에서도 여권이 “가장 나쁜 검찰의 적폐가 나타났다”고 비난하는 등 비슷한 정쟁이 반복되고 있다.

국회는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피하고자 대안 마련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위법성 조각 사유를 형법에 규정하는 개정안들이 18, 19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논의되지 못했다. 검사가 피의사실공표죄 사건을 불기소처분했을 경우 재정신청이 가능하도록 하는 개정안도 19대 국회에 제출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20대 국회에는 피의사실 공표로 명예훼손죄를 범한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하는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