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진창수] 미·중 무역전쟁이 주는 경고

입력 2019-09-16 04:04

최근 미·중이 무역 협상을 앞두고 서로 성의 표시를 하면서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보도가 눈에 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간단계의 잠정적인(interim) 합의도 고려할 수 있다고 내비쳤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내에서도 무역전쟁에 대한 피로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다소 불만족스럽더라도 잠정 합의를 통해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렇다고 미·중 무역전쟁이 관리되고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이 된 것은 아니다. 현재 미·중 무역전쟁은 트럼프 대통령의 특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내 정치엘리트들의 전략적인 판단에 기인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 시대에 절제된 대중국 전략이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고 본 것이다. 미국 내에는 중국을 제대로 다루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증가하고 있으며, 마이클 스웨인 등 중국에 우호적이었던 학자, 전략가들 역시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강력하게 표출하고 있다. 미국의 정계, 학계 등에서도 중국에 대한 옹호의 목소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정당과는 관계없이 대중국정책의 압박에 대부분 동조한다. 화웨이 사태에서 나타나듯이 AI, 5G, 빅데이터 등 미래 핵심 과학기술에 대한 표준 경쟁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결국 이 분야에 대한 선점과 플랫폼 구축이 안보 군사 분야의 우위까지 보장한다는 양국의 인식이 내재되어 있다. 특히 중국은 미·중 전략경쟁을 ‘이익의 침해’ 차원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면서 맞대응을 불사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최근 미·중 무역전쟁은 기존의 패권 경쟁과는 달리 미·중 간 극단적인 전쟁으로까지 비화할 가능성은 낮다. 기존 패권국의 패배와 몰락은 비교적 가시적으로 승자와 패자가 확실하였다. 현재 미·중 무역전쟁은 기술표준, 제도, 국제규범 등의 복잡한 패권 경쟁으로 얽히면서 쉽게 승자와 패자가 가려지지 않는 지루한 싸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주기적으로 분쟁이 격화되었다가 일시적인 소강 국면을 거치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일정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는 국가(특정 국제 레짐의 장악)가 지속적인 주도권을 발휘하기가 어려우며, 이에 대한 반격도 가능한 상황이 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중국에 비판적인 국가들이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독일 등 유럽의 주요 국가들 역시 중국의 부상이 미친 외교, 경제 분야의 침투효과를 우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동·아프리카 국가들도 중국의 점점 거세지는 영향력 행사와 우회적 분쟁 개입에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 이는 트럼프 정부의 대외정책에 불만을 갖고 있는 국가들조차 미·중 전략경쟁에서 중국을 선택하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한 미·중 무역전쟁은 각국의 국내 정치에도 영향을 미쳤다. 많은 전문가들은 ‘금융시스템의 불안을 동반한 세계 경제의 악화는 국내 정치의 분열을 가져온다’고 경고한다. 우선 국제경제의 불안전성이 저성장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소외감을 갖는 계층이나 그룹이 불만을 가지면서 선거에서는 예상외의 결과를 가져왔다. 포퓰리즘이나 내셔널리즘이 국내 정치에 침투하면서 사회불안은 더욱 확산된 것이다. 또한 경기를 회복하기 위한 각국 정부의 금융완화정책은 양극화를 가져왔다. 금융완화는 자산 가격을 올리고 있어 오히려 자산가에는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다. 결국 금융시스템의 불안, 불황, 그리고 사회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국내 정치의 불안정은 확대되었다.

한국으로서는 미·중 전략경쟁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대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과거처럼 미·중의 중간 포지셔닝(이분법적인 분리대응)으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미국과 중국 어느 국가로부터도 신뢰를 받지 못하는 ‘동시 방기’에 직면할 수 있다. 국내적으로는 포퓰리즘과 내셔널리즘을 극복하면서 미래 동아시아 구축의 큰 그림 속에서 한국 외교를 다시 정립해야 한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