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들] 육아·친정문제로 힘들던 삶… 주 영접 후 우울감 사라지고 평온

입력 2019-09-16 00:09

콩새라는 별명을 가진 나는 조잘대기 좋아하는 유쾌한 아이였지만 초등학교 때 처음 집안 환경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농사 규모를 점점 늘리신 아버지는 그와 함께 날이 갈수록 주량도 늘어났다. 술에 취해 밤새 주정을 하고 음주운전 사고를 내는 등 가족들을 늘 염려와 불안 속으로 몰아넣었다. 결국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정신병동에 입원하셨다.

일찍 결혼하고 군에 입대한 아버지가 집에 있는 어머니에게 날마다 편지를 쓰며 애틋하고도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는 지난 이야기를 어머니께 들었는데 그 사랑이 지금은 증오와 미움으로 변한 것을 보면서 ‘아! 사람의 마음은 변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내겐 ‘속지 말자 남자, 속지 말자 인간’이란 생각이 굳어졌다.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친구 중 가장 먼저 시집을 갔다. 지긋지긋한 환경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영감이란 별명을 가진 남편은 바보인지 천재인지 모를 정도로 마음은 정말 소년이었다. 직장을 인천에서 춘천으로 옮겨도 매주 내려와 온갖 정성을 다했고 그 마음에 감동한 나는 결국 마음 문을 열었다. 결혼 후에도 남편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이 배꼽을 잡고 웃어도 웃지 못하고, 슬픔도 느끼지 못하는 감성 제로녀였다. 남편은 직장에 가고 혼자 집에서 가사와 육아, 친정의 힘든 문제까지 겹쳐 우울과 염려에 시달렸고 얼굴은 굳어만 갔다. ‘사람이 자면서도 쉼을 얻지 못한다’는 잠언 말씀이 딱 내 상황이었다. 오래 교회를 다녔지만 한심한 자신을 보며 ‘하나님이 살아계시긴 한 걸까’ 하는 의문은 깊어갔다.

마침 친구를 따라간 한마음교회에서, 부활의 주를 만난 제자들은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기뻐했던 것을 알게 됐다. ‘그럼 나는 뭐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 받고 싶어 매달릴 때 어느 언니가 ‘기자들이 기사를 쓸 때, 사건을 그대로 글로 옮겨 놓는다. 십자가 사건도 부활도 모두 실제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이 정확하게 기록한 역사다’라고 했다. 법정에서도 한 명의 정확한 증인만 있어도 이기는데 부활은 직접 목격한 이들이 많고 40일 동안 함께한 후 생명까지 버린 제자들의 삶이 정확히 보였다. 부활은 정말 믿을 만한 확실한 증거였다. 그 순간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는 천지개벽 같은 고백을 했다. 환경에 따라 하나님의 존재까지 부인했던 내 중심은 예수님을 죽인 악한 중심이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내가 주인 돼 살았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영접했다.

강 같은 평화가 내게 임하며 끊임없던 염려와 우울함이 단숨에 사라졌다. 시아버님 장례식 때 언덕 위 산소로 올라가며 골고다 언덕길을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신 예수님 생각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메말랐던 ‘감성 제로녀’였던 나는 어느새 눈물을 흘리는 자가 됐다.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술을 끊지 못했다. 식도 출혈로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있을 때 아버지 귀에 대고 복음을 전하며 믿어지면 발가락을 움직여보라는 말에 발가락을 까딱거리며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나는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 사랑해요. 아픔도 고통도 슬픔도 없는 천국에서 만나요’ 하며 보내드렸다.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던 남편도 ‘오직 주만이’ 간증을 듣고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 교회에서 번역하며 공동체와 함께 주와 복음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노인 재가센터에서 일할 때 어느 할머니께 복음을 전했는데 ‘하나님이 언제 왔다 가셨어? 사람이 진짜 죽었다가 다시 살 수 있어?’ 하시더니 해같이 빛나는 얼굴로 예수님을 영접했고 삶의 짐에 눌려 살던 어머니도 지금은 기쁘게 전도자의 삶을 살고 있다. 감성 제로였던 나를 고통 속에 살아가는 영혼들에 복음을 전하는 자로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한선미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