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 성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사진) 전 충남도지사가 9일 대법원에서 징역 3년6개월형을 확정받았다. 피해자 김지은씨의 ‘미투’ 폭로가 나온 지 1년 6개월 만이다. 대법원은 유일한 직접 증거였던 김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이날 피감독자 간음 등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의 상고심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안 전 지사는 2017년 7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비서 김씨를 4차례 성폭행하고 6차례 업무상 위력 등으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1, 2심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두고 정반대 판결을 내놨다. 1심은 김씨의 행동이 ‘피해자답지 않다’며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1심 재판부는 또 “‘나름의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는 피해자 진술이 사실이라고 해도 통상적 수준의 거부나 저항이 없었으면 성폭력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반면 2심은 “피해자 김씨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됐다”며 1차례 강제추행을 제외한 나머지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2심 재판부는 오히려 안 전 지사의 진술 내용이 계속 바뀌어 신빙성이 없다고 봤다. 안 전 지사 측의 ‘김씨의 피해자다움이 부족하다’ 주장은 “정형화한 피해자라는 편협한 관점에 기반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의 판단도 2심과 같았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범행 전후에 보인 일부 언행 등이 성범죄 피해자라면 보일 수 없는 행동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그러한 사정을 들어 피해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현직 도지사이자 차기 대권주자였던 안 전 지사의 지위와 권세가 ‘위력’에 해당한다는 점도 원심과 의견을 같이했다.
대법원은 하급심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4월 나온 ‘성인지 감수성’ 대법원 판결을 판단 법리로 인용했다. 당시 대법원은 처음으로 판결문에 ‘성인지 감수성’을 언급하며 “성희롱 피해자가 처한 특정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피해자 진술을 가볍게 배척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성범죄 피해자는 당사자의 성격이나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대처가 다를 수밖에 없고, 피해자의 관점에서 진술이나 행동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는 재판이 끝난 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이 판결을 계기로 업무상 위력에 의한 직장 내 괴롭힘과 성폭력이 지금 당장 끝나기를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를 변호해 온 정혜선 변호사는 “피해자가 움츠러들지 않고 (권력형 성범죄를) 외부에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주도록 판결이 유지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공대위에 보낸 문자를 통해 “진실이 권력과 거짓에 의해 묻혀 버리는 일이 또다시 일어날까 너무나도 무서웠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앞으로 세상 곳곳에서 숨죽여 살고 있는 성폭력 피해자분들의 곁에 서겠다”고 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