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이례적 태풍 대비 지도… ‘정상국가 지도자’ 이미지 부각

입력 2019-09-09 04:08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를 긴급 소집해 제13호 태풍 ‘링링’의 북상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위험한 상황이 닥치고 있는데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당 간부들을 질책했다. 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제13호 태풍 ‘링링’이 상륙하기 전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재난 관련 회의를 사전에 주재하고 이를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7일 “노동당 중앙군사위가 6일 오전 태풍에 의한 피해를 막기 위한 비상확대회의를 긴급 소집해 국가적 비상 재해방지 대책을 토의했다”며 “김 위원장이 회의를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홍수 등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복구 대책 마련을 위해 중앙군사위를 소집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재해가 닥치기 전 피해 예방을 위해 중앙군사위를 소집한 것은 이례적이다. 사전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민심을 다독이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대외적으로 ‘정상국가 지도자’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 위원장의 행보는 남측의 대통령처럼 국가적 위기관리를 하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것이고, 자신이 솔선수범해 대응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비상확대회의에서 태풍의 세기와 예상 경로, 피해 예상 지역 등에 대한 보고를 받고 대책을 논의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당과 정부의 간부 등이 재해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군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중앙군사위는 회의에서 박정천 포병국장(육군 대장)을 인민군 총참모장으로 새로 임명했다.

북한 매체들도 태풍 소식과 피해복구 상황을 주민들에게 세세히 알렸다. 조선중앙통신은 8일 현재 5명이 사망하는 등 모두 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또 북한 전역에서 460여세대의 주택과 15동의 공공건물이 이번 태풍으로 파괴되거나 침수됐다.

매체들은 피해복구 총력전을 주문했다. 조선중앙TV는 “전 사회적으로 피해 지역 인민들이 사소한 불편도 느끼지 않도록 그들에 대한 물심양면의 지원 사업을 힘있게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풍으로 인한 농경지 피해가 약 458㎢(여의도 면적의 157배)에 달해 올해 북한의 작황이 크게 나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태풍이 북한의 최대 곡창지인 황해도를 관통해 피해가 더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향후 태풍 피해를 근거로 국제사회에 추가적인 식량 지원을 요청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편 북한은 9일 정권수립 71주년 기념일(9·9절) 행사를 비교적 조용히 치를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는 정주년(5년 단위로 꺾이는 해)이 아니기 때문에 금수산태양궁전 참배와 중앙보고대회, 기념연회 정도만 진행될 것으로 정부는 예상하고 있다. 군 당국에도 북한의 대규모 열병식 준비 동향은 식별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이 중앙보고대회에 참석할 경우 대남·대미 메시지를 낼지는 지켜봐야 한다. 북한 내부적으로도 조용한 행사로 치르는 점을 감안하면 이 자리에서 대외 메시지가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전망이 많다.

노동신문은 이날 기사에서 ‘국가와 인민의 근본 이익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티끌만한 양보나 타협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김 위원장의 4월 시정연설을 언급하며 “적대 세력들에게 한 걸음 양보하면 두 걸음 물러서게 되고 열 걸음, 백 걸음 물러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승욱 이상헌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