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물가상승률 0.5% 안팎 그칠듯… 저물가 수렁에 빠지나

입력 2019-09-09 04:03

지난달 사상 첫 마이너스를 낸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해 연간으로 0.5% 안팎에 그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저물가 흐름이 뚜렷해지는 것이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물가상승률은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8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을 보면 올해 1~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52%로 같은 기간과 비교해 1965년 물가통계를 작성한 이후 가장 낮다.

매년 1~8월을 기준으로 봤을 때 기존 최저는 외환위기 후폭풍이 한창이던 1999년(0.64%)이었다. 국제유가가 폭락하고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가 터졌던 2015년 1~8월 물가상승률은 0.65%에 머물렀었다.

올해 1~8월 물가상승률이 사상 최저를 찍은 건 0%대 저물가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에 그친 영향이 크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0.04% 하락했다. 마이너스 폭이 크지 않지만, 물가상승률이 처음으로 0%를 밑돌았다는 점에서 무겁게 받아들여졌다.

정부는 지난해 말로 예측했던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1.6%)를 지난 7월 0.9%까지 내렸다. 하지만 해외 주요 투자은행(IB)은 더 낮은 물가상승률을 보일 것으로 관측한다. JP모건을 비롯한 IB 9곳의 올해 한국 물가상승률 전망치 평균은 0.7%다. JP모건과 씨티그룹, 바클레이스 등 3곳이 0.5%로 내다봤고 스위스 UBS는 0.6%로 낮췄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국내외 36개 기관의 올해 한국 물가상승률 전망치 평균은 지난 7월 0.9%에서 지난달 0.8%로 내려앉았다. IHS마킷과 데카방크는 각각 0.4%로 가장 낮게 잡았고 ING그룹, DBS그룹, 캐피털이코노믹스, 피치 등이 0.5%로 추산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이달과 다음 달에도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다. 지난해 같은 시기와 비교해 국제유가가 낮은 수준인 데다 농축수산물가격은 하락세를 보이는 탓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달 말 기준금리 동결 배경을 설명하면서 “지난해 같은 시기의 농축수산물 가격 폭등 등에 따른 기저효과로 길면 3개월까지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은과 정부는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을 ‘디플레이션(지속적 물가 및 경제성장률 하락)의 징조’로 해석하는 걸 경계한다. 마이너스 물가는 구조적 문제보다 외부 요인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비슷한 진단을 내놓았다. KDI는 ‘경제동향 9월호’에서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마이너스 기록은) 수요 위축에 공급 측 기저효과가 더해진 것”이라며 “일시적 요인이 소멸하는 올해 말 이후 반등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최근 마이너스 물가는 농산물 가격 하락(-11.4%),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석유류 가격 하락(-6.6%)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는 게 KDI 설명이다.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지난달에 0.8%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한국 경제가 기초체력을 회복하지 못하는 한 ‘저물가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우울한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KDI는 “최근 우리 경제는 대내외 수요가 위축되며 전반적으로 부진한 모습”이라며 “소매판매와 설비 및 건설투자가 모두 감소한 가운데 수출 부진도 지속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강창욱 기자, 세종=이종선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