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몰릴 때는 하루에 콜 50개는 거뜬히 넘겨요. 어제는 태풍이 왔는데도 출근했습니다.”
8일 서울 강남구의 한 배달대행업체 앞. 배달이 몰리는 주말 점심 여러 명의 배달 기사(라이더)들이 주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에 나섰다. 한 기사는 스마트폰으로 시시각각 콜을 확인하고 지도를 보면서 배달에 걸리는 시간을 계산해 동선을 짜느라 분주했다. 배달을 마치고 돌아온 기사들은 사무실에 들러 물 한 잔 마실 새도 없이 땀을 비오듯 흘리며 다른 배달지로 향했다. 업체에서 만난 배달 기사 최모(32)씨는 “열심히 일하는 라이더의 경우 하루에 콜 50건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음식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배달업 시장은 매년 급성장하고 있지만 정작 기사들의 처우는 점점 더 열악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배달대행업체가 우후죽순 늘면서 경쟁이 과열되고 배달 단가가 낮아져 무리하게 콜수를 채워야 하는 실정이다.
회원 수가 1만8000여명인 배달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송파구 기사님 모집합니다. 하루 콜 50개 보장, 초보 가능” 같은 구인 글이 시시각각 올라왔다. 주문이 많기로 유명한 강남 지역에서는 하루에 100건 이상의 콜을 받았다는 글도 심심찮게 있었다. 택배·배달기사 노동조합 ‘라이더 유니온’의 박정훈 위원장은 “요즘 라이더들은 보통 40개, 많으면 70개까지 콜을 받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렇게 무리하게 배달에 나서다 보니 관련 사고도 늘고 있다. 최씨와 동료들은 태풍 링링이 한반도를 강타했던 7일에도 어김없이 출근했다. 최씨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 운행을 조심했더니 ‘왜 이렇게 늦게 오느냐’고 질책하는 고객들도 있었다”고 허탈해 했다. 서울 노원구에서 배달 기사로 일하는 한 라이더는 “지난달엔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중간에 브레이크가 잘 안 들어서 조마조마했는데 결국 오토바이가 박살 나는 사고가 났다”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달까지 서울 지역 이륜차 교통사고는 6404건으로 지난해에 비해 11.9% 늘어났다. 최근 3년간 이륜차 교통사고 사망자는 총 196명이었고, 이 중 배달 종사자가 28.6%로 가장 많았다.
박 위원장은 “배달대행업체 설립에 별다른 규제가 없는 탓에 회사 수가 급증했고 배달 단가가 내려갔다”며 “그만큼 콜을 더 많이 받아야 하는 라이더들이 위험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배달 거리가 1.5㎞ 이내면 배달 기사 수수료는 3000원가량, 거리가 500m 늘어날 때마다 500원씩 추가된다.
한 배달대행업체에 면접을 보러온 김모(35)씨는 “팔다리만 멀쩡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니냐”며 “하루에 콜 30건 정도는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투잡’으로 야간에 배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인천에서 라이더 일을 하는 한 남성은 온라인 카페에 지난달 수익내역을 공개하며 “배달로 250만원, 본업을 더하면 950만원을 벌었다”고 적었다.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일각에선 ‘위장도급’ 주장도 나온다. 한 업체가 계약서에는 라이더들을 개인사업자로 명시해 놓고 실제로는 출퇴근 관리와 주말 근무 등을 지시하며 지휘·감독을 해왔다는 것이다. 라이더유니온은 9일 위장도급 관련 기자회견도 열 예정이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