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총선안도 부결… 3연패 당한 존슨 ‘굴욕의 날’

입력 2019-09-06 04:02
사진=AFP연합뉴스

영국 하원이 4일(현지시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3개월 추가 연기를 골자로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다음 달 31일까지 무조건 유럽연합(EU)을 떠나겠다던 보리스 존슨(사진) 총리의 호언장담이 무색해졌다. 존슨 총리가 의회 내 반대파에 맞서 준비했던 조기총선 카드조차 하원에서 부결됐다. 존슨 내각은 이틀에 걸쳐 24시간 동안 브렉시트 관련 세 차례의 하원 표결에서 전패하며 취임 6주 만에 리더십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영국 하원의 존슨 총리 반대세력들은 전날 표결을 통해 존슨 내각으로부터 의사일정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고, 이날엔 더 큰 표차(찬성 327대 반대 299)로 ‘노딜 브렉시트 방지 법안’(노딜 방지법)을 가결했다. 이 법안은 ‘노딜 브렉시트’도 불사하겠다는 존슨 총리에 맞서 브렉시트 시한을 내년 1월 31일로 미루는 내용을 담고 있다.

브렉시트 연기를 수용할 수 없다고 여러 차례 밝혀온 존슨 총리는 의회 해산을 위해 다음 달 15일 조기총선을 치르는 안을 발의했지만 이마저도 좌절됐다. 조기총선을 위해서는 하원의원 3분의 2에 해당하는 434표가 필요했지만 찬성은 298표에 그쳤다.

노딜 방지법이 하원을 넘어 상원에서도 통과되면 존슨 총리는 자신의 최대 공약이었던 ‘다음 달 31일 브렉시트 강행’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정치생명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는 상황이다. 현지에서는 존슨 총리가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상원에서 시간 끌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다음 주부터 한 달간 의회를 정회하기로 결정해놓은 상황에서 오는 9일까지 상원 통과와 여왕 재가 절차를 밟지 못하면 노딜 방지법은 자동 폐기되기 때문이다.

영국 언론은 존슨 총리를 지지하는 보수당 상원의원들이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에 나서는 등의 방식으로 시간을 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딜 방지법의 상원 심의를 앞두고 보수당 브렉시트 강행파는 개별 안건마다 토론과 표결을 거쳐야 하는 수정안 100여개를 발의하며 시간 끌기를 본격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 상원은 심야까지 이어진 토론 끝에 노딜 방지법을 6일까지 처리키로 전격 합의했다. 시간 끌기 전략을 미연에 차단한 것이다. 상원이 노딜 방지법을 처리해 하원으로 다시 보내면 하원은 9일 최종 표결을 하게 되고, 이후 여왕의 재가를 받으면 다음 주 의회 정회 전 입법을 마무리할 수 있다.

존슨 총리에게 남은 카드는 다시 한 번 조기총선을 밀어붙이는 것 정도다. 실제 브렉시트 강경파인 제이컵 리스-모그 하원 원내대표(보수당)는 5일 하원에서 다음 주 의사일정을 소개하며 9일 조기 총선 동의안을 또다시 상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이미 한 번 실패한 방법인 데다 야권은 브렉시트 연기 입법이 완료되기 전에는 조기 총선 개최 요구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어 도박에 가깝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만이 궁지에 몰린 존슨 총리를 위로하며 지지를 표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존슨 총리는 내 친구다. 이기는 방법을 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영국판 트럼프’라고 불리는 등 자신과 유사한 성향을 지닌 자국 중심주의·포퓰리스트 리더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