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성냥갑 형태의 신축 아파트는 서서히 보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재개발·재건축 계획 수립 전 건축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시작한 서울시가 ‘공간 효율’보다 ‘도시미관’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시는 5일 ‘도시 건축혁신’ 1호 사업지에 대한 기본구상을 확정·발표했다. 특징 없이 엇비슷하게 생긴 ‘아파트 공화국’에서 탈피하겠다는 취지다. 서울시는 아파트 디자인이 곧 서울의 디자인이라고 보고, ‘보기 좋은 아파트’ 짓기를 계속할 방침이다.
주변에 흑석역과 현충원, 서달산, 중앙대 등이 있는 ‘흑석 11구역’(조감도)은 스카이라인(건물과 하늘이 만나는 지점을 이은 선)에 중점을 뒀다. 아파트 최고층을 서달산 산등성이 높이에 맞춰 조화로운 느낌이 들도록 했다. 서달산 너머 현충원에서 아파트가 보이지 않도록 높이를 조정하고, 아파트 쪽 도로에서 서달산을 볼 때 확 트인 인상을 주도록 기획했다.
아파트 고층부에는 계단식 테라스형 옥상정원을 조성한다. 한강 변 경관을 극대화하기 위한 형태다. 서울시는 “흑석11구역은 서달산과 한강변의 정온한 도시풍경과 조화가 필요한 지역”이라며 “자연에 순응하고 지역사회와 어울리는 아파트단지를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아파트 층수는 낮아졌다. 최고 층수는 20층에서 16층으로 평균 층수는 16층에서 13층으로 줄였다. 단, 기존 계획에서 공원 용지를 줄이고 건물 용지를 늘려 전체 세대수는 늘어났다. 서울시 관계는 “사업성 대신 공공성을 추가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애초 흑석 11구역은 신축 아파트들이 선호하는 V자 형태의 고층 아파트를 나열한 형태의 기획안을 서울시에 제출했다 퇴짜를 맞았다. 서울시 도시재정비위원회는 심의에서 현충원·한강 변 경관을 고려하지 않은 수익성 위주의 계획이라며 기획안을 부결했다.
인사동 내 ‘공평15 16지구’에는 아래쪽이 여러 갈래의 골목길로 뚫린 17층짜리 상업 건물을 지을 예정이다. 해당 지역에 피맛길 등 역사 가치가 있는 옛길이 많다는 점이 반영됐다. 건물 모양은 일반적인 사각기둥형이 아닌 계단형으로 짓는다. 주변 문화재와 골목길 등이 건물에 막혀 답답해 보이지 않도록 건물 1동의 높이를 기존 계획보다 낮춘 것이다. 옥상엔 정원을 꾸며 모두에게 개방한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5월 재개발·재건축 계획 수립 전 건축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도시·건축혁신안’ 시범 적용 사업 대상지 4곳을 발표했다. 이번에 기본 구상을 발표한 흑석 11구역과 공평15 16지구,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 재건축과 성동구 금호동3가 재개발이 대상이었다. 서울시는 나머지 두 곳의 기본구상도 올해안에 발표할 방침이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