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인 아버지가 자주 근무지를 옮겨 두 살 때부터 외가에서 자랐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를 끔찍이 사랑해 주셨지만 부모에 대한 그리움에 나는 늘 우울했다. 대학 때 아버지가 전역해서 드디어 모두 함께 살았다. 그러나 기쁘고 행복한 삶의 기대도 잠시뿐 부모님의 끝없는 불화가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그때 어느 선생님의 권유로 처음 교회에 갔다.
취직하고 바로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하며 성가대, 주일학교 교사, 청년회 등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지만 내 마음은 늘 답답했다. 그러다 자상하고 준수한 외모의 모태신앙인 남성을 만나 결혼했다. 신앙으로 나를 잘 이끌어줄 것이란 기대는 바로 빗나갔다. 그는 세상 즐거움에 빠져 술 마시고 당구 치고 노래방에서 밤을 새우곤 했다. “아빠! 매일 친구 집에만 놀러 가지 말고 우리 집에도 좀 놀러 와라.” 딸이 이런 충격적인 말을 할 정도였다. 어느 날 너무 힘들어 “내가 더 이상 당신하고 못 사는 게 아니고 더러워서 안 산다”며 울부짖었다.
이런 삶이 10년을 지나며 몸과 마음이 병들었다. 마침 아이들도 ‘가와사키’라는 흔치 않은 소아병으로 입퇴원을 반복했다. 작은 아이가 백혈병이 의심되니 검사하자는 얘기를 듣는 순간 ‘하나님이 정말 계신 거야?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내 화살은 하나님을 향했다. 세상에 빠진 남편과 아이들의 건강문제로 쌓이는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기 시작했다. 시간만 나면 계속 먹으며 소주도 몰래 매일 마셨다. 그러면서도 어떤 두려움에 교회를 나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나는 이혼을 생각하며 가출했다. 그러나 3일 만에 ‘혹시 나중에 후회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왔다. 바로 다음 날부터 아이를 업고 시골길을 걸어 새벽기도에 나갔다. 기도문이 열리고 환상도 보고 병도 치유되면서 다시 마음이 뜨거워지며 여전도회장 직분을 맡아 봉사도 열심히 했다. 하지만 내 신앙은 결국 거기까지였다.
춘천에 이사를 오면서 시댁 식구들을 따라 한마음교회에 나갔다. 어느 자매의 ‘실존 인물인 예수님은 근거 없이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구약의 예언대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이분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다’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직접 목격한 증인들에 의한 기록인데 내 생각대로 믿고 안 믿고 할 문제가 아니었다. 부활이 역사적인 사건임을 알게 되는 순간 큰 기쁨이 임했다. 그런데 예수를 믿지 않는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말씀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내게 물으셨다. ‘남편이 돈을 벌어다 주지 않느냐?’ ‘아니요’ ‘그럼 너를 때리느냐?’ ‘아니요’ ‘그럼 너는 행복하니?’ ‘아니요’ ‘왜 행복하지 않지?’ ‘남편의 마음이 제게 없어서요.’ 그때 바로 알게 됐다. 남편의 마음이 내게 없어 불행하다고 느꼈던 것처럼 하나님도 내가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지 않아 마음 아파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며 통곡했다. 드디어 나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그 죄를 회개하고 내 마음에 참 주인으로 모셨다.
“그동안 당신을 주께 대하듯 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하며 바로 사과했다. 남편은 그런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날부터 아파트 단지는 물론 지하상가와 노인정 등 사람만 만나면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핍박을 받기도 했지만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는 너무 감사했다. 남편도 세상의 즐거움을 모두 끊고 예수님을 영접해 함께 새벽을 깨우며 사명자의 삶을 산다. 지독한 불교 신자로, 복음을 전하면 ‘너나 천국 만국 가라’고 하시던 친정아버지도 우리 부부의 끈질긴 기도와 전도로 예수님을 영접하셨다.
가족이 모였을 때 복음을 전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 정말 꿈만 같고 너무 멋지다. 복음으로 맺어진 영원한 가족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손미숙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