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환법 공식 철회… 홍콩사태 급반전

입력 2019-09-04 23:14
사진=AP연합뉴스

캐리 람(사진) 홍콩 행정장관이 대규모 홍콩 시위의 도화선이 됐던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철회를 공식 선언했다. 2014년 ‘우산혁명’ 실패를 경험했던 홍콩 시민들은 88일간 이어진 최장기 시위를 통한 투쟁의 결실을 보게 됐다.

람 행정장관은 4일 오후 6시 TV를 통해 방송된 녹화 연설을 통해 홍콩 시위대의 첫 번째 요구 조건을 받아들여 송환법을 공식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홍콩 시위대의 5대 요구 사항은 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다.

범죄인 인도 법안은 홍콩과 범인인도 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중국, 대만 등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홍콩 야당과 재야단체는 이 법이 인권 운동가나 반정부 인사 등을 중국 본토로 보내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반발해 왔다. 람 장관은 송환법을 공식 철회했지만 나머지 4가지 요구사항은 수용을 거부해 불씨를 남겼다.

람 장관은 경찰 진압에 대한 조사는 홍콩 경찰 감시 기구인 경찰민원처리위원회(IPCC)가 맡을 것이고, 체포된 시위대의 석방 및 불기소는 법치주의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행정장관 직선제에 대해선 “보편적인 참정권의 구현에 관한 문제는 기본법에 정해진 궁극적 목적이며, 법률적인 틀 안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면서도 “실용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사회를 분열시킬 수 있다”고 수용불가 입장을 밝혔다.

람 장관은 “앞으로 홍콩 시민들을 만나 시민들의 불만이 무엇인지 듣고, 홍콩 사회 갈등의 뿌리 깊은 원인이 무엇인지 조사하겠다”고 덧붙였다.

송환법 공식 철회에 대해 ‘우산 혁명’의 주역이었던 베니 타이는 “송환법 철회만으로는 절대 충분하지 않다”며 “정부는 8월 31일 결정을 철회해 보통선거를 수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영국과 홍콩 주권 반환 협정에서 약속한 ‘행정장관 직선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 층이 즐겨찾는 온라인 포럼인 ‘LIHKG’에서도 나머지 4가지 요구사항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따라서 송환법 공식 철회로 시위대와 정부의 갈등은 상당히 완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시위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일각에선 람 장관의 송환법 철회 발표는 홍콩 시민들이 2003년 정부의 국가보안법 추진을 무산시켰던 상황과 비교해 시민들의 승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2003년 당시 퉁치화 홍콩 행정장관은 홍콩 헌법인 기본법 23조에 근거해 국가보안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가 시민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이를 철회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