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딜 저지 ‘하원의 반란’… 브렉시트 내년 1월31일로 연기 유력

입력 2019-09-05 04:06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3일(현지시간) 하원에서 손가락질을 하며 격정적으로 연설하고 있다. 존슨 총리는 하원이 ‘노딜 브렉시트’ 강행을 막기 위해 브렉시트를 연기하는 법안을 표결하기로 확정하자 이를 비판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해서라도 브렉시트를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만약도, 예외도 없이 오는 10월 31일 무조건 유럽연합(EU)을 탈퇴하겠다”는 계획에 급제동이 걸렸다. 아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됐던 일부 보수당 의원까지 포함된 영국 하원의 ‘반란군’이 3일(현지시간) 노딜 브렉시트(합의 없는 EU 탈퇴)를 막기 위해 실시된 결의안 투표에서 대거 찬성표를 던지며 존슨 총리에게 결정적 일격을 가했다.

하원은 이어 4일엔 ‘브렉시트 3개월 추가 연기’를 골자로 하는 법안까지 표결키로 했다. 통과 가능성이 높아 브렉시트가 내년 1월 31일로 미뤄질 것이 유력하다. 존슨 총리는 반란군 진압을 위해 ‘의회 해산’을 의미하는 조기총선 카드를 꺼내며 으름장을 놨지만 하원 구성상 이마저도 어려운 상황이라 존슨 내각은 취임 한달 반여 만에 최대 위기에 몰렸다.

영국 언론들은 하원이 힐러리 벤 노동당 의원이 입안한 ‘노딜 브렉시트 저지 법안’ 표결을 위한 동의안을 찬성 328표 대 반대 301표로 통과시켰다고 보도했다. 여당인 보수당 소속 일부 의원들이 당론을 어기고 반기를 든 것이 특히 뼈아프다. 존슨 총리가 표결에 앞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으면 다음 총선에서 공천권을 박탈하겠다고 위협했음에도 무려 21표의 이탈표가 나왔다. 노딜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사회에 미칠 후폭풍에 대한 우려와 존슨 총리의 독선적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반란표를 던진 이들 중에는 하원 최장수 현역 의원으로 재무장관을 지낸 켄 클라크, 윈스턴 처칠 전 총리의 손자인 니컬러스 윈스턴 솜스 의원 등이 포함됐다. 보수당은 즉각 반기를 든 의원들을 출당 조치하겠다고 했다.

이날 통과된 결의안 자체가 노딜 브렉시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의사일정 주도권을 4일 하루동안 내각에서 하원으로 넘기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원에서 존슨 내각이 반대하는 노딜 브렉시트 저지 법안을 표결하기 위한 선행 절차인 것이다.

노딜 브렉시트 저지 법안은 존슨 총리가 EU 정상회의 다음 날인 오는 10월 19일까지 EU측과 브렉시트 재협상을 하지 못하면 EU 탈퇴 시점을 내년 1월 31일까지 미루도록 강제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1차 저지선인 결의안이 27표 차로 하원을 통과한 만큼 이 법안도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결의안 표결 직전 필립 리 보수당 의원이 노딜 브렉시트에 대한 반발로 탈당하고 자유민주당에 입당하면서 현재 보수당은 과반 지위도 잃은 상태다.

해당 법안이 하원 통과와 상원 표결을 거친 후 영국 여왕의 재가를 받으면 입법 절차가 마무리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수당이 상원에서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에 나설 가능성도 있으나 하원에서 통과된 법안을 부결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존슨 총리는 이에 맞서 조기총선 동의안을 하원에 상정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는 “하원이 (노딜 브렉시트 저지) 법안을 통과시킬 경우 다음 달 14일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했다. 조기총선으로 의회에서 안정적 과반을 확보해 노딜 브렉시트를 강행하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이 카드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동의안이 통과되려면 전체 하원 의석(650석) 중 3분의 2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표 확보가 쉽지 않다. 리 의원의 탈당으로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북아일랜드민주연합당(DUP)의 표를 합쳐도 과반에 미달한다. 야당들의 협조가 절실하지만 이들은 노딜 브렉시트 저지 법안 입법 완료 전에는 조기총선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형민 권중혁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