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시민들이 3개월 넘게 대규모 시위에 나서도록 만든 것은 홍콩 정부의 ‘송환법’, 즉 범죄인 인도법 개정 때문이다. 홍콩이 중국 본토와 대만, 마카오 등 그동안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용의자를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홍콩은 영국, 미국 등 20개국과는 인도 조약을 맺었지만 중국과는 조약을 맺지 않고 있다.
홍콩 정부가 범죄인 인도법 개정에 나선 것은 지난 2월 대만에서 벌어진 홍콩인 살인 사건이 계기가 됐다. 당시 20대 홍콩인 남성이 대만에 함께 여행간 홍콩인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돌아왔다. 홍콩 경찰이 용의자인 홍콩인 남성을 체포했지만 살인죄로 처벌할 수 없었다. 홍콩은 영국식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타국에서 발생한 살인죄를 처벌할 수가 없는데다 대만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콩 정부는 이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법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중국과도 용의자를 소환하고 송환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홍콩 시민들은 중국 정부가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 이 법을 악용할 수 있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현행 법에선 타국으로 범죄인을 인도할 때 홍콩 의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지만 법안이 개정되면 행정수반과 법원의 결정만으로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게 된다. 홍콩 행정수반은 간선제 투표로 선출되고 중국 정부가 최종 임명하기 때문에 중국의 요청을 거부하기 어렵다.
실제로 2015년 10~12월 홍콩 코즈웨이베이 서점 직원과 출판사 주주 등 5명이 중국 공산당과 지도부의 비리 등이 담긴 책을 출간하려다 잇따라 실종된 사건은 홍콩 시민들의 중국 ‘감시 체제’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는 이유가 됐다. 2017년 이들 중 1명은 ‘중국 선전에서 납치돼 허위자백을 강요받았다’고 폭로했다.
홍콩 시민들의 시위는 지난 3월 31일 처음 시작돼 송환법 2차 심의를 앞둔 6월 9일 대규모로 본격화됐다. 홍콩 정부는 시위가 심상치 않자 2차 심의를 미뤘고, 법안 추진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홍콩 시민들은 완전 철회와 캐리 람 행정장관 사퇴를 요구하며 다시 시위를 이어갔다. 이후 지금까지 홍콩에서는 중국 본토의 개입 위협 속에서도 시위가 계속돼 왔다. 홍콩 시민들의 시위는 표면적으로는 송환법 때문에 시작됐지만 이면에는 중국 정부의 간섭이 나날이 심해지는 데 대한 공포와 불만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