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패싱’ 정치 포기 역풍에 전격 ‘여의도 회군’

입력 2019-09-05 04:01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와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관련 회동하고 있다.

극한 대치로 치닫던 여야가 4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 실시에 전격 합의한 것은 국회의 중요한 책무를 스스로 저버리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청문회 개최에 합의한 속내와 목적은 딴판이지만, 청문회 패싱 현실화에 따른 책임 논란으로부터 여야 모두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분석이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와 청문회 개최 사실을 발표한 뒤 “최종적으로 증인이 없어도 인사청문회를 하게 된 것이기 때문에 저희들의 원칙은 지켰다”고 설명했다. 가족 증인 채택은 패륜적인 것이라 절대 안 되고, 법적인 기한에 맞춰 청문회가 진행돼야 한다는 당의 원칙을 지켰다는 명분을 챙겼다는 것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당초 지난 2일 예정됐던 청문회가 무산된 뒤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 조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이 해소됐다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기자간담회를 지켜본 지지층을 중심으로 조 후보자 임명을 찬성하는 쪽으로 다시 여론이 돌아섰다는 판단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상 초유의 편법적인 간담회를 둘러싸고 절차적 정당성 시비가 이어지는 것에 대한 부담은 적지 않았다. 문희상 국회의장도 이날 오전 이 원내대표를 만나 입법부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야당과의 청문회 합의를 당부했다.

게다가 기자간담회 이후에도 계속해서 속도를 내는 검찰 수사와 추가 의혹 제기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인사청문회도 없이 임명을 강행하는 것은 청와대는 물론 여당으로서도 위험부담이 따른다는 판단이 많았다. 이 원내대표는 따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청문회도 안 하고 임명하는 것과 청문회를 하고 임명하는 건 10개의 짐 중 최소한 하나라도 내려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다양한 경로로 당 지도부에 어떻게든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는 의견이 전달됐고, 이런 여론이 원내 지도부의 판단에 반영됐다고 한다. 여기에 청문회를 통한 여론의 반전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 당직자는 “기자간담회를 보면서 청문회가 열리더라도 후보자가 충분히 진정성을 갖고 국민을 설득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당이 청문회를 수용한 배경에도 청문회 보이콧에 대한 비판 여론이 크게 작용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합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법대로 청문회’를 고집하며 아예 안 하는 것과 여는 것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며 증인 채택 양보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당은 그동안 청문회 일정이 늦춰지면서 조 후보자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드러났고, 이를 통해 반대 여론 또한 견고하게 쌓였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 기자간담회 이후 조 후보자의 딸이 받은 동양대 총장 표창장 위조 의혹 등이 불거지고 검찰의 동양대 압수수색 등 수사도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상황이다. 그런 만큼 야당이 국회에 부여된 대통령의 인사권 검증 권한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비판을 뒤집어쓸 이유는 없다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당내에는 증인도 없고 일정도 하루뿐인 청문회에 들러리 서는 것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나오고, 청문회에서 결정적 한 방이 없을 경우 지도부 책임론이 제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나래 김용현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