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이 과로자살 어떻게 입증하나, 상식적으로 불가능… 인정 과정 가혹”

입력 2019-09-05 04:05

2년 전 한 인터넷 강의업체에서 일했던 전직 디자이너 A씨는 그때를 회고하면 “내일 아침에 심장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만큼 괴로웠다. 고문 당하듯 밤을 새우고, 언제 엎어질지도 모르는 업무를 붙잡고 끝도 없이 신음했다. 업무규칙은 강압적이었고, 과정은 체계가 없어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 항상 스스로를 갈아넣어야 했다. 퇴사 뒤에도 A씨는 반년 넘게 우울증에 빠져 술과 담배에 매달렸다. 그가 그만둔 지 얼마되지 않아 이 업체에서는 당시 36세였던 장모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처럼 장시간 노동과 과로, 상사의 괴롭힘으로 생긴 우울증이 원인이었다.

이른바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 지 1년이 훌쩍 넘었지만 근로 현장에서 과로로 목숨을 끊는 일이 아직까지 빈번하다.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과 과로사OUT공동대책위원회는 4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과로사 과로자살 문제 대응, 경험과 과제’를 주제로 워크숍을 열었다. 장씨를 비롯한 과로사 자살사건 희생자 유가족과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모여 현황을 공유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희생자 유가족들은 과로자살을 인정받기까지 그 과정이 너무나 가혹하다고 호소했다. 장씨 유가족 장향미씨는 “산업재해는 피해입증 책임을 당사자가 해야 하지만 과로자살 사건의 경우 유가족들이 할 수밖에 없다. 상식적으로 증명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숨진 장씨는 사건 직전까지 업무과중과 상사 괴롭힘을 호소했으나 지난해 1월 목숨을 끊었다. 유가족 장씨는 “관련된 정황을 가지고 있는 회사 측은 유가족이 자료를 요구해도 거절하고 어떻게든 은폐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과로자살 사건을 대하는 경찰의 인식 또한 고쳐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방송콘텐츠 제작 대기업에 다니다 목숨을 끊은 조연출의 아버지라고 밝힌 한 참석자는 “경찰 조서작성 과정에서부터 ‘(사건 전부터) 정신병을 가지고 있었느냐’ 묻는 등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질문을 받고 더 이상 신뢰를 가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