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도 모르고 반짝이던 유리 날개들
내 귓불에 매달린 나비 귀걸이와
물빛 노트를 쥐여주고
그가 손을 흔들며 돌아섰을 때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
나도 난간에 기대 손을 흔들었지
그가 계단을 다 내려가
문을 열며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나를 올려다보며 손을 흔들었을 때
웃으며 한 발 내디뎠지
나는 구르기 시작했지
문은 반쯤 열린 채
닫히지 못하고 있지
그는 구르는 나를 올려다보고 있지
지금도 구르고 있지
여긴 어디쯤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아직도 그는 나를 바라보고 있지
반쯤 닫힌 문 앞에서
문고리를 잡고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지
언제쯤 나는 바닥에 닿을 수 있나
언제쯤 어혈을 풀 수 있나 나는
언제쯤 나를 다 쓸 수 있나
밥을 먹을 때도
동사무소에 갈 때도
잠을 잘 때도
나는 끝없이 계단을 구르고 있지
그가 눈을 떼지 못하고 있지
문을 닫지 못하고 있지
정채원의 시집 ‘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 중
정채원은 1996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해 올해로 24년째 시인의 길을 걷고 있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아득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데, 저 시 역시 그렇다. ‘끝없는 계단’은 그의 신작 시집 첫머리를 장식한 작품. 정채원은‘시인의 말’에 “시를 통해 눈 하나 더 찾게 될까” 자문하면서 “그럴 수 있다면 아프고도 황홀한 계단을 끝없이 굴러 떨어져도 좋겠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