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먼저 먹어보고, 대신 죽는 훈련도…VIP 옆 바람소리도 놓치지 않는다

입력 2019-09-21 04:01
대통령경호처 소속 경호관들이 대통령 피격 상황을 가정해 훈련하는 모습. 경호관들은 행사 경호가 없는 날에도 여러 돌발 상황을 대비한 상황 훈련을 반복한다. 대통령경호처 제공

국회의사당에 폭탄 테러가 발생해 이곳을 찾았던 대통령이 사망한다. 그를 대신해 환경부 장관이 60일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지정된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의 줄거리다. 한 행사장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괴한이 달려든다. 그때 2대 8 가르마에 검은 정장 차림의 경호관이 괴한을 막아선다. 육탄전이 벌어진다. 사태가 수습된 뒤 경호관은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말한다. “저희는 대통령님을 지키지 못한 경호팀입니다.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고 싶었습니다”라고.

대통령의 24시간을 함께하며 온몸을 던져 돌발사태를 막는 경호관은 현실에도 존재한다. 1963년 창설된 대통령경호처 소속 540여명의 직원들이 그 주인공이다. ‘하나된 충성, 영원한 명예’라는 기치 아래 대통령의 안위를 지키는 그들은 과연 누구이며,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경호처가 발간한 책 ‘바람 소리도 놓치지 않는다’와 경호관들의 설명을 토대로 경호처의 숨가쁜 일상을 재구성해봤다.

정보 수집에 검식까지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은 노무현정부 청와대에서 홍보기획비서관으로 재직할 당시 베일에 가려져 있던 경호처의 일상 풍경을 깜짝 공개했다. 매일 오전 9시, 경호처 각 사무실에 경호원가(歌)가 장중하게 울려 퍼진다. ‘내 조국 지켜나갈 영광스런 우리들, 굳건한 방패 되어 무궁화 지키는 보람에 산다’는 노래를 들으며 일과를 시작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 새벽부터 현장에 급파되는 경우도 많다.

경호관은 24시간 대통령과 함께한다. 눈을 보호하기 위해 선글라스를 끼고, 저격 등을 대비해 차량 위도 경계한다. 대통령경호처 제공

대통령이 참석하는 모든 행사에는 경호처 선발대가 먼저 출동한다. 사전 회의와 조율을 통해 경호관 개개인이 맡을 구역과 임무가 정해진다. 행사장에 도착해서는 주변 곳곳을 돌며 점검한다. 경호관들은 선발대를 ‘손발대’라 부른다. 손과 발로 행사장을 철저히 확인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별명이다.

경호관의 임무는 단순한 경호에 그치지 않는다. 폭발물 탐지와 청와대 시설 보호, 위험이 될 만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정보 수집도 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검식’ 업무다. 대통령이 먹는 음식 하나하나도 철저한 검사가 이뤄진다.

사전에 식재료 오염도를 조사하고, 대통령에게 음식을 전달하는 직원의 손도 청결 검사를 한다. 이후 식사가 완성되면 경호관이 먼저 먹어본다. 기미상궁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경호관 대부분은 술과 담배를 즐기지 않는다. 체력 유지를 위해서다. 주말이나 휴일 없이 일하다보니 경호관들은 항상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한다. 한 경호관은 6일 “식구들이 늘 아쉬워하지만 국가에 남편과 아빠를 바쳤으니 괜찮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대신 죽기’ 훈련은 필수

신입 경호관은 서류와 필기시험, 체력·신체검사와 면접을 거쳐 선발된다. 경쟁률은 100대 1을 훌쩍 넘는다. 어렵게 꿈을 이뤄도 합격과 동시에 고난이 시작된다. 6개월간 진행되는 신입 교육은 초인적인 체력을 요구한다. 사격 무도 공수 해상 소방 구급 훈련이 이어진다. 다만 중도 포기하는 인원은 많지 않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만큼 각오를 하고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0일 국회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청와대로 향하던 중 차량 선루프를 열고 일어서서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경호관들이 더욱 긴장하는 순간이다. 대통령경호처 제공

일상 경호나 행사 경호에 배치되지 않는 날은 교육과 훈련이 반복된다. 체력훈련과 어학 교육에 법학 행정학 경호학 경비학 대테러술 범죄심리학 강의가 이어진다. 권위와 힘으로만 경호하는 시대가 지났다는 판단에 따른 교육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경호관의 고된 훈련 모습을 보고 “꼭 저렇게까지 힘들게 해야 하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2008년 국정감사에서는 경호관의 무술 수준이 화제가 됐다. 당시 경호관 300여명의 무술 단수를 모두 합치니 무려 1503단, 1인당 평균 5단이었다.

경호처는 가끔 가족들을 초청해 경호무도 시범을 선보인다. 경호무도의 핵심은 ‘대통령 대신 죽는 것’이다. 총탄을 대신 맞거나 칼에 대신 찔리거나, 폭탄을 몸으로 덮는 등의 상황을 가정한 훈련 시범이 이뤄진다. 들뜬 마음으로 구경 온 가족 중 일부는 이 장면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경호도 시대를 탄다

시대가 변하면서 경호관의 외형도 달라지고 있다. 2대 8 가르마는 이제 옛날얘기다. 이 헤어스타일이 오히려 경호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경호처 출신 인사는 “근접 경호를 제외한 사복 경호가 이뤄질 때는 경호관 신분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편한 머리를 할 때도 있다”고 했다. 다만 대통령을 보좌하는 경호관으로서 깔끔한 외형은 필수다. “팬티까지 다려 입으라”는 선배들의 가르침이 대대로 경호처에 내려오는 이유다.

청와대 경내에서는 구역을 나눠 경계한다. 대통령경호처 제공

경호관들은 친근한 인상을 주기 위해 웃는 연습도 한다. 노무현정부 때는 경호처 사무실 책상마다 거울을 두기도 했다. 강아지 사진이 붙어 있어 ‘냥냥이 거울’이라고 불렸다. 이 거울을 보며 표정 연습을 하라는 뜻이었다.

경호처 내부에서는 ‘차지철의 군홧발’이나 ‘장세동의 심기경호’를 탈피할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한다. 한 전직 경호관은 “대통령을 지킨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은 유지하되 위압감을 주는 모습은 지양한다는 게 경호처의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경호처를 둘러싼 논란도 있었다. 지난해 11월 경호처 직원이 시민을 폭행해 입건됐고, 올해 3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구 칠성시장 방문 때 경호관이 MP7 기관단총을 든 사진이 SNS에 퍼져 ‘과잉 경호’ 논란이 일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앞으로 이런 사례를 막고 대통령 경호에 소홀함이 없도록 다양한 개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