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 바람 타고… 한반도 연안 습격한 독성 해파리

입력 2019-09-07 04:02



한반도 연안이 독성 해파리들로 잠식되고 있다. 통상 남해안과 제주도에서만 출현하던 해파리가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자 인천 앞바다나 강원도 연안까지 북상했다. 일부 맹독성 해파리는 쏘이면 사망에 이를 정도로 위험하다. 해파리는 여름철 피서객뿐 아니라 어민에게도 골치 아픈 불청객이다. 정부는 해파리 떼의 한반도 연안 습격에 대응하기 위해 주무 부처인 해양수산부에 ‘해파리 중앙대책본부’를 설치하고 관계기관과의 실시간 대응체계를 구축했다.

올해 한반도 연안의 가장 큰 불청객은 노무라입깃해파리다. 원래 중국 연안에서 주로 출몰하는 노무라입깃해파리는 해류를 타고 6~7월 한반도 연안으로 넘어온다. 최대 크기가 2m, 무게도 200㎏에 이르는 대형 해파리다. 특히 올해 들어 지난해보다 430배 넘게 증식했다.

지난달 24일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도 노무라입깃해파리 떼가 나타나면서 막바지 피서를 즐기던 해수욕객들이 긴급 대피하는 일이 벌어졌다. 정부나 관계기관이 해파리 번식 증가에 대비해 전국 72개 해수욕장에 유입 방지막을 설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노무라입깃해파리는 촉수가 많고 최장 10m까지 늘어나기도 해 1마리가 여러 사람을 쏠 수 있다. 이 해파리에 쏘이면 마치 채찍에 맞은 듯 빨간 상처가 난다. 2012년 인천 을왕리해수욕장에서 이 해파리에 쏘인 초등학생 어린이가 숨지기도 했다.

노무라입깃해파리뿐 아니라 한반도 연안에는 유령해파리, 작은부레관해파리, 작은상자해파리 등 맹독성 소형 해파리들이 자주 나타난다. 유령해파리는 하얀 솜사탕같이 생겼다. 무심결에 잡았다가는 큰코 다칠 수 있다. 몸길이 30~50㎝에 불과한 유령해파리는 원래 남해안과 제주도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최근 강원도 동해항 연안에도 등장하고 있다. 제주 연안에 주로 출몰하는 작은부레관해파리도 몸길이는 5~15㎝에 불과하지만 맹독성이다. 물 표면에 떠 있는 공기주머니 탓에 종종 비닐봉지로 오인해 만지다가 쏘이는 사고가 발생한다. 한반도 연안 전역에서 발견되는 보름달물해파리(몸길이 15㎝ 안팎)는 독성이 약하지만 만지면 두드러기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부산에서만 올해 해파리에 쏘인 입욕객이 119명으로 집계됐다.

해파리는 쏘임 사고 외에 어업에도 상당한 지장을 초래한다. 특히 어선이 조업 중에 노무라입깃해파리 같은 대형 해파리 떼를 만나면 어구 파손 피해를 본다. 해파리는 사람뿐 아니라 어류도 공격하는데, 해파리와 함께 그물에 걸린 고기들이 해파리에 쏘여 죽거나 팔 수 없게 되는 상황도 발생한다. 국립수산과학원 관계자는 6일 “주로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는 해파리들이 어류의 알이나 어린 물고기까지 먹어치워 어류 개체수 감소를 유발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해파리는 무서운 번식력을 자랑한다. 최초 발생한 해파리 유생(폴립) 하나가 자가분열로 5000여 마리로 증식한다. 한번 해류를 타고 연안에 들어온 해파리들은 다시 해류를 타고 넘어가기 전까지 어마어마하게 번식해 인근 양식장 등에 막대한 피해를 주기도 한다. 무분별한 어획으로 거북이나 쥐치 등 해파리 천적의 개체수가 줄어든 것도 해파리 급증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부는 해파리 떼의 연안 습격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6월 해수부에 해파리 중앙대책본부를 구성했다. 해수부 수산정책실 사무실에 마련된 해파리 중앙대책본부는 매주 국립수산과학원, 전국 지방자치단체 102개 거점, 384명의 어업인 모니터링 요원들이 보내오는 해파리 신고 상황을 접수해 분석한다.

어업인 모니터링은 어민들이 조업하다 해파리 떼를 발견하면 잡거나 사진을 찍어 담당 지자체, 수산과학원에 신고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사진만으로 종류 구분이 안 되면 수산과학원 관계자들이 직접 찾아가 포획 및 유전자 분석을 하기도 한다. 수산과학원은 이를 바탕으로 매주 해파리 발생 지역과 종류를 분석한 모니터링 결과 보고서를 수산과학원 홈페이지 해파리정보시스템에 올린다.

해파리 떼 출현으로 어업 피해 등이 예상되면 정부는 관심, 주의, 경계, 심각으로 이어지는 4단계의 경보를 발동한다. 해파리 유생의 대량 서식지가 새로 발견되면 관심경보가 나간다. 한반도에 자주 나타나는 노무라입깃해파리의 경우 바다 100㎡당 1마리 이상만 발견돼도 곧바로 주의경보가 발령된다. 민관 합동 모니터링 결과 조업 나간 어업인 중 해파리를 발견한 비율이 20%를 넘겨도 주의경보를 내린다. 정부는 지난 7월 제주도, 전남, 경남 해역에 노무라입깃해파리 주의경보를 발령한 데 이어 지난달 초에 부산, 울산, 경북에서도 주의경보 범위를 넓혔다.

100㎡당 노무라입깃해파리가 3마리 넘게 발견되면 곧바로 경계경보로 격상된다. 2012년 전남 신안과 전북 앞바다에서 노무라입깃해파리 경계경보가 두 달 가까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 정도면 조업을 나간 어민 절반이 해파리를 발견하는 수준이다. 100㎡당 해파리가 10마리 이상 발견되면 심각경보를 내린다.

노무라입깃해파리와 같은 대형 해파리 떼의 등장으로 어업 피해가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정부는 민간과 힘을 합쳐 직접 해파리 제거에 나서기도 한다. 어선의 후미 부분에 그물을 연결하고 그물 안쪽에 3겹의 절단망을 장착한 채로 해파리의 반대 방향으로 어선을 운용하면 해파리들이 절단망을 거치면서 분해된다.

어민들이 잡은 해파리를 정부가 수매하기도 한다. 통상 노무라입깃해파리는 비린내가 심해 국내에서 식용으로 사용되지 않았지만 2015년부터는 식용으로도 쓰인다. 해파리 때문에 그물 등 어구나 양식장이 손상되면 정부가 일정 부분 수리비를 지원하기도 한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