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박모(33·여)씨는 두 달 전부터 저축하는 재미에 빠졌다. 카카오뱅크의 단기 적금 상품에 가입했는데, 저축할 때마다 좋아하는 캐릭터 ‘라이언’이 스마트폰 화면에 하나둘씩 늘어난다. 박씨는 “매주 금액이 1만원씩 올라가 부담이 커지지만 캐릭터가 귀여워서 (적금을) 깨지 못한다. 인내심도 자극하는 바람에 꾸준히 저축하고 있다”고 전했다.
은행권에서 젊은 고객층을 겨냥한 ‘펀 세이빙(Fun Saving)’ 상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펀 세이빙은 ‘재미있는 저축’이란 뜻으로, 게임 요소를 결합한 금융상품을 말한다. 초저금리 시대가 이어지자 은행마다 ‘흥미’ ‘재미’를 덧붙인 상품으로 ‘고객 모시기’ ‘차별화’에 나서는 것이다.
KB국민은행의 ‘KB Smart폰 적금’은 펀 세이빙의 ‘스테디셀러’로 불린다. 모바일뱅킹 애플리케이션(앱) 적금 화면에서 커피나 택시 등의 아이콘을 터치하면 그에 상응하는 금액이 자동으로 저축되는 상품이다. 고객은 가벼운 마음으로 언제든지 소액을 저축할 수 있고, 절약을 생활화할 수도 있다.
신한은행은 국민 보드게임 ‘부루마블’과 유사한 게임을 적금 상품에 녹인 ‘쏠(SOL) 플레이 적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모바일뱅킹 앱에서 게임에 참여해 레벨을 올리면 우대금리를 준다. 우리은행은 고객이 정한 금연이나 다이어트 목표를 달성하면 우대금리를 얹어주는 ‘위비 꾹 적금’을 출시했다. 우대금리는 최대 0.6% 포인트에 이른다.
KEB하나은행은 고객에게 매일 ‘오늘은 얼마니?’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저축을 장려하는 ‘대화형 문자뱅킹 서비스’를 내놓아 시선을 끌고 있다. 고객이 답장한 금액만큼 자동으로 저축된다. 카카오뱅크의 ‘26주 적금’에 가입하면 매주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들을 모을 수 있다.
펀 세이빙이 유행하는 배경에는 ‘짠테크(짜다와 재테크의 합성어) 열풍’이 자리 잡고 있다. 주머니 사정에 여유가 없는 청년층 사이에선 불필요한 낭비를 막고 푼돈이라도 모으자는 움직임이 있다. 여기에다 소비 욕구를 자제하는 게 ‘인내’가 아닌 ‘소소한 기쁨’이 되도록 설계한 펀 세이빙은 짠테크족(族)에겐 더없이 좋은 자극제다. 특히 젊은 고객들은 기성세대와 달리 펀 세이빙을 ‘귀찮은 숙제’로 여기지 않는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어떻게 더 재미있는 요소를 상품에 녹일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펀 세이빙에 금융교육까지 붙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3일 “금융 지식이 부족한 청년층이 펀 세이빙으로 모은 목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까지 컨설팅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단발성 마케팅에 그치지 않고 고객과 은행 모두 ‘윈-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원장은 “은행은 고객의 자산을 늘려주기 위해 힘써야 하는데 펀 세이빙은 단순히 고객 수만 늘리려는 의도에 가깝다”면서 “최근 파생결합상품 사태도 불거진 만큼 고객도 흥미보단 수익률과 안정성 등 여건을 스스로 고려해가며 상품 선택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