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람(사진) 홍콩 행정장관이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을 추진해 혼란을 초래한 것을 후회하며, 가능하다면 행정수반 자리를 그만두고 싶다고 토로한 대화 내용이 유출됐다. 홍콩 시위대의 사퇴 요구 등을 거부하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온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로이터통신은 2일(현지시간) 람 행정장관이 지난주 홍콩에서 기업가들과 만나 약 30분간 비공개 회동을 했고, 이 가운데 24분 분량의 대화 녹취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람 행정장관은 이 자리에서 “행정수반으로서 홍콩에 엄청난 혼란을 초래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며 “내게 선택권이 있다면 처음으로 할 일은 깊은 사과를 하고 (직을) 그만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송환법 추진에 대해 “결론적으로 매우 어리석었다. 중국 본토에 대한 홍콩인의 두려움과 분노의 감정이 이렇게 큰지 몰랐다”고 후회했다. 로이터는 실제 람 행정장관이 최근 송환법 철회 등을 포함한 홍콩 분쟁 해결 방안을 중국 정부에 제안했지만 거부당했다고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녹취에서 람 행정장관은 홍콩 사태가 중국 국가안보와 주권 문제로 번지면서 자신의 정치적 선택권이 매우 제한적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은 자기연민에 빠져 있을 시간은 아니다”면서도 “최일선의 경찰관들이 받는 압박을 줄이지 못하고 정부에, 특히 나에게 화가 난 다수의 평화로운 시위대를 진정시키기 위한 해결책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자책했다. 로이터는 행정장관의 목소리 톤은 목이 메는 듯했다며 시위대의 폭력에 단호한 대처 방침을 밝혀온 강철 같은(steely) 이미지와는 달랐다고 설명했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홍콩 무력개입 계획은 없다고 못 박았다. 람 행정장관은 “중국은 국제적인 체면을 중시한다”며 “홍콩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투입할 때 치러야 할 대가가 크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홍콩이 경제적인 고통을 겪을지라도 중국은 홍콩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장기전을 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람 행정장관은 로이터 보도와 관련, “사퇴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람 행정장관은 3일 홍콩 현지 언론과 만나 사적인 녹음기록이 유출된 데 유감을 표하고 “지난 6월부터 지금까지 중앙정부에 사임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법에 따라 폭력 사태를 중단시킬 것”이라며 직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