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의 하나는 마사지다. 이마 부위는 머리 쪽으로, 턱은 목 쪽으로…. 그렇게 가능한 한 피부를 밖으로 팽창시키는 게 주름을 줄이기 위한 손동작의 원칙이다.
화장품 회사 코리아나가 운영하는 서울 강남구 언주로 코리아나미술관의 국제기획전 ‘아무튼, 젊음’에는 팽팽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저녁이면 많은 여성이 하는 얼굴 마사지 장면이 나온다. 동유럽을 대표하는 페미니즘 작가 산야 이베코비치(70)의 영상 작품 ‘인스트럭션 #1’ ‘인스트럭션 #2’이다. 1976년 27세 때 자신의 얼굴에 마사지 방향으로 화살표를 그려 넣곤 하나하나 문질러 없애는 퍼포먼스를 했던 작가는 40년이 흐른 2015년 같은 퍼포먼스를 했다. 20대의 그녀와 60대 후반의 그녀가 나란히 똑같이 마사지 퍼포먼스를 하는 영상은 묘한 느낌을 준다.
코리아나미술관은 주로 신체와 여성에 관련된 주제를 전시로 담아 왔다. 이번에는 젊음과 노화다. 한국은 2017년 65세 이상 인구가 14%를 넘어서는 고령사회가 됐다. 그래선지 젊음에 대한 강박은 숭배 수준으로 우리 사회를 지배한다.
전시엔 신디 셔먼, 셀렌 바움가르트너, 전지인, 김가람 등 국내외 작가 13명(팀)이 초청돼 젊음이란 뭔지, 그 도도한 통념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베코비치의 작품은 나이 든 여성의 젊음에 대한 집착과 고민을 보여준다. 그러나 마사지의 결과는 엉뚱하게도 선이 지워짐으로써 얼굴이 흉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젊음과 미의 강요에 반기를 드는 듯해 통쾌함이 있다. 미국 작가 마사 윌슨(72)의 작품도 비슷한 맥락이다. 두 채널 속 여성이 마주보고 있다. 한 사람은 젊고 한 사람은 늙었다. 작가 윌슨의 과거와 현재의 얼굴이다. 젊음도 늙음도 한 개인의 속성임을 말하는 작품은 “나도 한때는 청춘이었다. 그러니 나이 들었다고 괄시하지 말라”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영화 속 정형화된 여성 이미지로 자신을 분장시킨 사진으로 1970년대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던 미국 작가 신디 셔먼(65)의 새로운 모습도 만날 수 있다. 그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셀피는 자신의 얼굴을 기발하게 왜곡하고 과장해서 가상의 인물처럼 보인다. 청춘의 무대인 인스타그램에서 그들보다 더 발랄하게 장난질하는 셔먼의 작품을 보면 예술가야말로 영원한 청춘의 초상임을 실감하게 된다.
한국 작가 전지인(40)은 젊음을 주제로 한 속담 등을 수집하고 그 지시 대상을 ‘너’로 치환해 거울 아크릴 위에 새겨 넣었다. ‘서른 살에 남자는 여전히 꽃같이 매력적이지만, 너는 늙어 보인다’는 문장이 그런 예이다. 문장 위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사회 통념을 낯설게 바라보게 된다.
한국 작가 곽남신(66)은 남성 역시 젊고 매력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회화를 통해 보여준다. ‘보디빌더’ '끄∼응’ 등의 작품은 근육을 키우기 위해 헬스기구에 매달려 용을 쓰거나 터질 것 같은 근육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는 마초적 남성을 해학적으로 보여준다.
노년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스위스 출신 셀렌 바움가르트너(39)는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인 50~70세 노장 무용수들의 춤 동작을 영상에 담았다. 청춘이라고 마냥 좋기만 한가. 불안과 불균형은 청춘의 또 다른 얼굴이다. 김가람(35) 작가는 한쪽에만 바퀴가 달린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로 그 양면성을 은유했다. 어렵지 않게 청춘과 노화를 성찰하게 하는 전시다. 11월 9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