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를 둘러싼 영국 내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반(反)브렉시트파가 ‘노딜 방지’ 법안을 통해 내년까지 브렉시트 연기를 요청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보리스 존슨 총리 등 영국 정부는 ‘조기 총선’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무조건 탈퇴를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존슨 총리는 2일(현지시간) 예정에 없던 각료회의를 주재한 뒤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 앞에서 “다음 달 17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브렉시트 합의에 도달할 것이라 믿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EU에 브렉시트 연기 요청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영국 BBC방송, 가디언 등이 보도했다
존슨 총리의 발언은 제1야당과 노동당 등이 오는 10월 31일로 예정된 브렉시트를 연기하는 법안을 하원에 제출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나왔다. 제러미 코빈 대표가 이끄는 제1야당 노동당은 영국이 10월 19일까지 EU와 합의된 새로운 브렉시트 협약을 체결하지 못하거나, 노딜 브렉시트가 의회 승인을 받지 못할 경우 EU에 내년 1월 31일까지 브렉시트 연기를 요청토록 하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당인 보수당 내에서도 노딜 반대파가 20여명이나 돼 이들이 찬성표를 던지면 브렉시트 재연기 법안은 가결될 가능성이 높다. 가디언은 “존슨 총리의 강경 정책에 보수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있다”며 “최소 17명의 보수당 의원이 이 법안에 찬성표를 던지겠다는 의사를 표명해 법안 가결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에 존슨 총리는 “영국은 다리를 잘린 채 더 이상 (EU와의) 협상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며 “국민의 의제를 계속 진행하자”고 호소했다. 조기 총선 가능성에 대해 존슨 총리는 “나도, 여러분도 선거를 원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지만 현지 언론들은 오히려 그가 조기 총선 카드로 반브렉시트 의원들을 협박(threat)했다고 보고 있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존슨 총리가 조기 총선을 치르는 방안을 의회에 제출할 것이라는 정부 고위관료의 발언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존슨 총리는 그동안 ‘노딜 브렉시트’도 불사하며 10월 31일에는 무조건 EU를 떠나겠다고 공언해 왔다. 조기 총선을 원하지 않는다는 존슨 총리의 발언은 조기 총선을 강행하지 않도록 브렉시트 연기 법안을 처리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셈이다. 총선은 하원의원 650명 중 3분의 2가 찬성하면 실시된다. BBC는 “이번 주가 브렉시트의 향방을 결정지을 중요한 한 주가 될 것”이라며 “주말이 지나면 우리는 어떻게 될지 확실히 알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EU는 노딜 브렉시트를 염두에 두고 자연재해에 준하는 대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노딜 브렉시트 시 EU 회원국 간의 이동에 혼란이 오고 식품·의약품 등 공급에도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에 따른 대비책이다.
BBC와 가디언 등은 EU 관리들이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경우 이를 홍수·지진·화재 등 주요 자연재해의 범주에 포함해 피해 회원국을 지원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EU는 피해 회원국에 ‘연대기금’으로 자금을 배분할 수 있게 된다. 이 계획은 EU 회원국과 유럽의회의 승인을 요하는데, EU 관계자들은 이번 주 관련 논의를 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