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오른팔’ 왕치산, 광둥성 방문… 홍콩 시위 ‘해결사’ 관측

입력 2019-09-04 04:08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위 참가자가 2일(현지시간) 오후 몽콕 경찰서 앞에서 경찰의 방패에 짓눌린 채 체포되면서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홍콩 경찰이 학생들의 동맹휴학과 노동계 총파업 이후 무더기 검거 작전에 나서면서 송환법 시위가 시작된 지난 6월 9일 이후 이날까지 체포된 시위 참가자는 1100명을 넘어섰다. 로이터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오른팔’로 불리는 왕치산(사진) 국가부주석이 홍콩 시위가 격화되는 와중에 홍콩 건너편 광둥성을 방문했다. 왕 부주석은 중국에 큰일이 닥칠 때마다 이른바 ‘소방수’ 역할을 해온 인물로 미궁에 빠져드는 홍콩 시위에도 해결사로 나서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시위 확산에 비상이 걸린 홍콩 경찰은 무차별적으로 시위 지도부 검거에 나섰다.


3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왕 부주석은 지난달 29일부터 31일까지 광둥성 자오칭과 광저우, 푸산 등을 방문했다. 그는 역사와 문화유산 조사연구 명목으로 박물관 등을 방문하고 푸산에서 열린 FIBA세계농구월드컵 경기도 관람했다.

그러나 그의 광둥성 방문은 홍콩 시위대의 대규모 집회와 중국의 무력 개입설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뤄져 예사롭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왕 부주석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A·사스) 사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등 국가의 위기 때마다 소방수로 나섰고 시진핑체제에서는 ‘부패와의 전쟁’으로 정적을 제거하고 권력을 공고히 해준 인물이다. 그는 1989년 천안문 민주화운동에 대한 강경 진압을 지지한 야오이린 전 상무부총리의 사위다.

앞서 자오커즈 국무위원 겸 공안부장도 지난달 26일 광둥성을 방문해 “외국 세력이 개입한 폭력과 테러, 전복과 침투 활동 등을 예방하고 엄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평론가인 천다오인 상하이정법대 교수는 “왕 부주석은 천안문 민주화 시위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고, 자오커즈는 경찰을 운용하는 총책임자”라며 “그들의 광둥성 방문은 지도부가 최전선에서 정보를 수집해 10월 1일 국경절을 앞두고 시위 진압에 대비하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 양광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홍콩 정세는 중요한 변화의 기점에 와 있다”며 “홍콩 사회 각계에는 폭도 진압과 질서 회복이 광범위한 공동 인식으로 자리했다”고 주장했다. 홍콩의 주요 여론이 시위 반대 쪽으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양 대변인은 또 지난주말 시위대의 공항 폐쇄 시도와 경찰관 폭행 등을 거론하며 폭력 시위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미 홍콩 시위의 양상은 색깔 혁명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장젠쭝 홍콩 정무사(한국의 국무총리실 성격으로 정무사 사장은 홍콩 정부의 2인자) 사장도 “폭력 세력은 홍콩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했으며 공공 안전을 무시하고, 국가 권위에 도전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는 이를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며 “폭동을 진압하고 질서를 회복하는 것은 가장 시급한 임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홍콩 경찰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송환법 시위가 시작된 지난 6월 9일부터 불법행위로 체포된 시위 참가자가 1117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홍콩 경찰은 전날부터 학생들의 동맹휴학과 노동계의 총파업으로 사태가 확산되자 시위 지도부 등에 대한 무더기 검거 작전에 나섰다. 홍콩 경찰이 동맹휴학을 주도하는 학생회장과 데모시스토당 지도부 등의 검거에 나선 것은 동맹휴학을 뜻하는 파과(罷課), 총파업을 뜻하는 파공(罷工), 상점은 철수하고 소비자는 불매운동을 벌인다는 파시(罷市) 등 시위대의 이른바 ‘3파(罷) 투쟁’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