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니는 성(城) 밖 사람이여…”
할머니의 이웃 평은 성 안에 사는지, 밖에 사는지가 제일의 항목이었다. 정작 당신은 수원성 서문 바로 안쪽 비탈에 사셨지만 성 안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말과 행동에 항상 배어 나왔다. 도시의 역사는 성곽으로 둘러쳐진 ‘성 안’이라는 특별한 영역으로부터 시작했다. 성 밖이 자연과 농경의 공간이라면 안은 행정과 문화의 영역이었다.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교수는 서울 성곽 즉 한양도성은 전쟁을 대비해 세워진 유럽이나 일본의 성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했다. 전쟁은 남한산성이나 북한산성 같은 산성에서 치렀고 우리 역사에 내란도 없었기 때문에 성벽을 올리거나 해자를 파는 일도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구의 도시처럼 밀도가 높고 건축물도 확연히 차이나는 도심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성 안’의 문화는 바깥의 교외와는 달랐다.
돌아가신 할머니와 성의 기억을 소환한 것은 얼마 전의 서울시 발표였다. 지난 7월 1일부터 사대문 안을 특별환경구역으로 정하고 공해배출 차량의 출입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의문이 든다. 과연 서울의 사대문 안이라고 하는 구역이 분명한가. 그리고 그 구역은 남다른 삶의 형태가 있어서 특별히 공해로부터 보호해야 하는가. 서대문은 이미 없어졌고 남대문과 동대문도 경계를 만들고 영역을 구분하는 기능은 사라진 지 오래다. 다만 그 지역을 상징하는 랜드마크일 뿐이다. 이렇듯 경계도 모호하지만 사대문 안이라 하더라도 특별한 건 없다. 관청이 모여 있고 사무실과 상업시설이 많기는 하지만 예전 같지 않다. 도심공동화라 불릴 만하게 주거는 점점 쇠퇴해서 많던 초등학교가 대부분 문을 닫았을 정도다.
이참에, 서울의 성곽을 복원하여 그 안을 ‘성 안’ 도시로 만드는 상상을 해본다. 사대문과 성곽이라는 역사자원을 활용하여 미래지향적 도시로 발전시킬 수 있겠다. 우선 가능한 최대로 성곽을 복원한다. 남산이나 옛 동대문운동장 부지에 지어진 DDP 등에서 실제로 많이 복원되었다. 이를 단순한 문화재가 아니라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있는 본래의 기능으로 되살리는 것이다. 성 안은 특별하게 계획한다. 성 안의 주된 교통수단은 걷기이다. 이미 촘촘한 사대문 안의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지상에서는 무인 트램으로 연결하여 교통체계를 완성한다. 불가피한 조업, 응급차량은 모두 친환경차량으로 교체한다. 혹여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을 위해 성 밖에 주차장을 만들고 자전거를 빌려준다.
이제까지의 강북의 개발은 뉴타운에서 보듯 강남과 같은 아파트단지로 만드는 방향이었다. 하지만 강북의 경쟁력은 600년 역사와 골목의 기억 같은 무형의 도시적 자산이다. 애초부터 아파트와 대형마트로 이루어진 미국식 전원주거가 지향점이 될 수는 없었다. 건축물의 밀도는 높이지만 높이는 낮춰서 경복궁 근정전을 최고 높이로 삼자. 당연히 대형마트는 들어올 수 없고 작은 상점들이 늘어선 도시의 거리를 만든다. 건물의 1층은 상가로, 2층 이상은 모두 주거로 한다. 공원은 고궁과 남산만으로도 충분할 터니 신도시 하나쯤은 거뜬히 담을 수 있는 주택을 확보할 수 있겠다. 이렇게 카페와 상점의 거리를 만들고 그 거리를 걸어서 생활하는 성 안의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들 수 있겠다. 여기에 4차산업혁명의 성과를 접목할 수 있다. 자율주행자동차나 인공지능,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걷는 도시의 문제와 단점을 모두 보완할 수 있다. 명실상부한 친환경 스마트도시가 된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 새로운 도시 패러다임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성 안에서 성 안 사람들은 걸어서 출근하고 교류하고 예절을 배우며 창작하고 생산하고 소비하여 상업이 왕성해지는 도시가 된다. 영국의 인류학자 존 리더는 도시를 인류 최후의 고향이라 했다. 도시가 전 인류의 보편적인 현상이며 궁극적인 주거형태라는 의미다. 같은 맥락으로 에드워드 글레이저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도시야말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 했다. 성벽의 운치가 드리운 첨단의 진정한 도시를 그려본다.
황당한 상상이라고? 서울에서 수십㎞ 떨어진 곳에 신도시를 세우고는 출퇴근을 위해 십조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지하 50m 깊은 곳에 터널을 파서 연결한다는 생각보다 더 황당한가? 어떤 생각이 더 바람직한가? 할머니의 고향, 성 안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경훈(국민대 교수·건축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