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기습 기자간담회로 ‘인사청문회 패싱’이 현실화되면서 여야 모두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여야는 2주 가까이 청문회 관련 협상을 진행했지만 합의의 묘는 살리지 못하고 끝까지 각자 입장만 고수했다. 국회가 장관 후보자를 검증할 권리를 스스로 포기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일 오전 청문회 개최를 위해 막판 절충을 시도했지만 결국 파행으로 치달았다. 이날은 당초 여야가 합의했던 조 후보자 청문회 날짜였다.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송기헌 의원은 “지난달 29일 여상규 법사위원장이 법사위 관행과 달리 (증인 채택 관련) 표결을 이야기했고, 청문실시 계획서와 자료 요구, 증인 채택을 한꺼번에 처리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어 “법사위의 오랜 관행과 원칙은 청문실시 계획서를 채택하고, 그 다음에 증인 채택을 하는 것”이라며 “여 위원장은 사과하고 이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말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자유한국당 소속 여 위원장은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일갈했고, 민주당 의원들이 반발했다. 설전이 계속되자 여 위원장은 “회의를 하려면 앉고, 하기 싫으면 나가라”고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개의 7분 만에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이에 한국당 의원들은 “처음부터 민주당은 청문회를 열 생각이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야는 ‘청문회 패싱’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겼다. 민주당은 한국당의 조 후보자 가족 증인 채택 문제로 청문회 일정이 차질을 빚은 것을 집중 공격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가족 증인을 철회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시간 끌기’ 전략이라고 일축했다. 한국당은 청문회를 의도적으로 깨고 거부한 것은 민주당이라고 맞섰다.
한국당은 국회가 법이 규정한 청문회를 개최해야 한다고 거듭 요구했다. 나 원내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에서 “법에 규정된 청문회를 할 수 있는 기간은 오는 12일까지로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며 “7일까지 (증인 채택을) 합의하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여당 일각에서도 조 후보자의 국회 기자간담회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부겸 민주당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왜 기자회견을 여기(국회)에서 하느냐. 어떻게 후보자가 국회에 와서 하느냐”고 말했다.
여야의 극한 대치 속에서 이날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의 막이 올랐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가 합의한 의사일정에 따르면 오는 17일부터 사흘간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23일부터 나흘간 대정부 질의를 실시한다. 국정감사는 이달 30일부터 다음 달 19일까지 하기로 했다. 2020년 예산안 및 기금운용 계획안에 대한 정부 시정연설은 다음 달 22일 개최한다.
하지만 여야 충돌로 정기국회는 내내 파행으로 얼룩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번 개각에서 지명된 장관급 후보자들의 인사청문보고서 송부 시한은 이날 종료됐지만,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를 제외한 6명의 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주 또는 다음 주 초 조 후보자 임명을 강행할 경우 정국은 유례 없는 냉각기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뿐 아니라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등 나머지 야당도 조 후보자 임명을 반대하고 있어 당장 교섭단체 대표 연설부터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한국당이 또다시 장외로 나가거나 국회 일정을 거부할 경우 내년도 예산 심사는 물론 각종 민생법안 처리도 어려워진다. 선거제 개혁법안은 물론 사법개혁특별위원회를 통한 검찰 개혁안 역시 여야 합의 없이 진행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신재희 김용현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