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법안이 정부 실적?… 정부, 유엔 아동보고서 또 부풀리기

입력 2019-09-03 04:03

정부가 아동 인권 향상을 위한 법안을 이미 실행된 것처럼 서술하거나 국회의원이 제출한 법안을 정부 입법안인 것처럼 포장해 유엔에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 등 정부 관계부처는 지난달 이런 내용을 담은 유엔 아동권리협약 이행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보고서 내용 상당수가 실제보다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2일 제기됐다.

복지부는 지난달 8일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에 “2019년 5월 모든 아동이 공적으로 등록돼 보호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출생통보제를 도입, 위기 아동발굴 및 보호체계를 강화할 것을 밝혔다”고 기술했다.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이 출생한 ‘모든’ 아동을 신분에 상관없이 국가에 통보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이에 따라 출생통보제가 유엔 권고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이주아동을 포함한 모든 아동이 출생통보제 범위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해당 내용을 담은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에 대해 현행 법체계를 흔들 수 있다며 수년째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다름 아닌 정부 부처 반대로 제도 도입에 진전이 없는 상황이지만 정부는 마치 출생통보제 시행이 이미 확정된 것처럼 보고서에 기술한 것이다.

정부는 국회에서 제출된 입법안을 정부 성과로 내세우기도 했다. 유엔은 이주아동 구금을 금지하도록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를 정부에 물었다. 외국인 보호소나 공항 송환대기실 등에서 아동들이 구금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요구였다. 유엔은 2011년에도 한국 정부에 보낸 권고안에 “동행 없는 아동이 구금될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한다”면서 “당사국이 난민과 비호 신청자나 동행 없는 상태의 아동의 구금을 삼갈 것을 촉구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정부는 이번 보고서에서 “법적 규정을 위해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는 정부입법안이 아닌 의원입법안이다. 시민단체들은 “정부 차원에서 이주아동 구금제한을 위한 입법 노력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성과를 부풀린 예는 시민단체 지적 외에도 있었다. 유엔은 국내에서 ‘노키즈존’이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정부가 이를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정부는 “노키즈존이 결과적으로 아동을 사회적으로 배제시킬 수 있음을 우려하고, 아동에 대한 인식 변화와 아동 삶의 질적 변화를 위해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수립했다”고 서술했다.

그러나 실제 포용국가 아동정책에서 언급한 건 ‘노키즈존 등 귀찮고 불편한 존재로서의 아동에 대한 시선도 존재’라는 한 문장과 함께 사설 통계를 인용한 게 전부였다. 실제 수립된 정책은 없었다. 한 아동인권단체 관계자는 “인권위가 내렸던 권고 외에 다른 조치는 지금까지 없었다”고 말했다.

유엔 아동위는 18~19일 국가본심의에서 정부와 시민사회단체 보고서 검토, 오프라인 심의를 병행한 뒤 다음 달 초 권고안을 내놓을 전망이다. 복지부 차관 등 한국 정부 대표단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이 자리에 참석한다. 국제아동인권센터 김희진 변호사는 “정부가 지난 2011년 유엔 권고 뒤 아동 문제를 대하는 태도 면에서 진일보한 게 사실”이라 평하면서도 “비준국으로서 의무를 구체적인 정책으로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