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서울에서 흥미로운 행사가 열렸다. ‘BTS 인사이트 포럼’이다. 방탄소년단(BTS)이 데뷔 후 첫 장기 휴가를 떠났다는 것까지 영국 BBC 뉴스에 나오는 시대. BTS를 단순한 아이돌이 아닌 사회 현상으로 인정하고 국내외 학자들이 이를 문학 철학 사회학 등 여러 분야에서 짚어본 행사다. 외국에선 이미 BTS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진행 중이고, 내년 초에는 영국에서 BTS 국제포럼도 예정된 상황. 정작 ‘BTS 보유국’인 한국에선 관련 소식이 없던 차에 반가운 일이었다. 있을 법했지만 없었던 BTS 포럼을 처음으로 기획한 이는 김영미(47·문화마케팅그룹 머쉬룸 대표)씨. 20년 넘게 마케팅 분야에 몸담아온 그가 BTS 포럼을 기획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시작은 한 통의 페이스북 메신저. 이지영 세종대 교수의 책 ‘BTS 예술혁명’을 읽고서다. 그는 일면식도 없던 저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책을 이해하고 싶은데 너무 어렵다, 우리 집에 나 같은 마케터 몇 명을 모을 테니 와서 설명 좀 해줄 수 있겠느냐는 내용. 저자는 단번에 “재미있겠다”고 답했고, 이들의 첫 만남은 4시간을 훌쩍 넘어갔다. 이렇게 시작된 시니어 마케터와 저자의 만남인 ‘북살롱’은 10개월 정도 꾸준히 이어졌다. 이 모임이 연결고리가 됐다.
김씨는 지난 6월 이 교수의 소개로 BTS 공연이 열린 영국 런던 웸블리에서 킹스턴대학 콜레트 발메인 교수를 만났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발메인 교수는 내년 1월 열리는 BTS 국제포럼의 주최자다. 김씨는 한국에서도 학자들을 모아 보면 어떨까 싶었다. BTS 관련 책을 쓴 학자들을 중심으로 섭외했다. 사비를 들여 개인이 시작한 일이었고 북살롱 모임 지인들이 도왔다. 결과는 꽤 성공적이었다. 3일 동안 총 18회의 발표 세션과 3회의 대담이 진행됐고, 매일 180여석이 매진됐다.
마케터의 관점에서 본 BTS는 이렇다. 예전에도 스타와 팬, 브랜드와 소비자가 있었다. 그런데 스타가 팬 위에, 브랜드가 소비자 위에 있었다. 마케터는 소비자가 왕이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현금자동입출금기(ATM)라 생각한다. 연예기획사도 팬들을 비슷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듯했다. 그런데 BTS는 그걸 깼다. “아미 덕분에 상 탔어요. 고마워요” 또는 “우리 아미 상 탔어요. 축하해요”라고 말하는 이들의 진심이 느껴지는 순간, 팬클럽 아미(ARMY)와 BTS의 경계는 무너진다.
올 초 새 앨범 발표 기자회견에서 BTS 리더 RM은 이런 말을 했다. “방탄소년단이 특별한 것은 우리에겐 특별한 팬인 아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100%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아미는 왜 그렇게 열심일까. BTS 신곡이 나오면 외국 라디오까지 사연을 보내 틀어 달라고 하고, 가사 번역은 물론 내용을 해석해 외국 팬들과 공유한다. 때론 혼자 머리를 싸매고 뮤직비디오의 숨은 상징을 찾아내기도 한다. BTS와 나의 경계가 없거나 희미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음악을 낸 건 BTS지만, 이를 해석하는 과정과 결론을 도출한 즐거움은 아미의 것이 되어버린다.
또 BTS는 아미가 아티스트와 팬의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관계임을 강조한다. ‘한 사람에 하나의 역사/ 한 사람에 하나의 별/ 70억 개의 빛으로 빛나는/ 70억 가지의 world.’ 콘서트 엔딩곡 ‘소우주’는 우리 모두의 삶에 하나의 우주가 담겼고, BTS도 아미와 같은 똑같은 하나의 별이라고 말한다. BTS와 아미는 이렇게 경계를 넘고, BTS라는 고리로 연결된 기쁨을 누리며, 아미들끼리 연대의 힘을 느낀다.
이번 포럼에서 김씨는 기획 과정을 설명했는데, 강연 제목이 ‘시작의 시작’이었다. ‘시작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어느 책의 구절도 인용했다. 올가을 작더라도 나만의 무언가를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런 거라면 시작하는 데 늦은 타이밍은 없을 것이다.
한승주 편집국 부국장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