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이뤄진 것과 그 이후의 진행 상황을 보면 청와대 내 자주파(自主派)의 입김이 세지는 모습이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과 최종건 안보실 평화기획비서관 등 전통적인 대미 외교를 탈피해 다자외교와 남북 관계를 중시하는 인사들이 약진하고 있다. 한·일 갈등을 계기로 불거진 안보 자강론이 대미 강경론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유학파인 김 2차장은 통상교섭 업무를 담당하던 시절에 쌓은 대미 네트워크가 강하다. 이 때문에 지난 2월 그가 청와대에 입성했을 때에는 정부가 대미 외교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청와대 참모들에 따르면 김 2차장은 그런 예측을 깨고 전통적인 대미 외교 노선에서의 탈피를 강조하고 있다.
김 2차장은 지소미아 종료 이후 직접 브리핑을 하고 미국과 일본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우리의 지정학적 가치와 안보 역량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며 “우리 국익을 위한 외교적 공간을 창출해야 한다”고 했다. 국방예산 증액과 군 정찰위성 도입도 제시했다. 지난달 12일 라디오에 출연해서도 “미국에 한·일 중재를 요청하면 청구서가 날아오고, 글로벌 호구가 될 수 있다”며 자주 외교를 강조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1일 “김 2차장은 애국가 2절을 휴대전화 컬러링으로 해놓을 정도로 국익을 먼저 고려하는 인물”이라며 “유학 등을 통해 쌓은 미·일 관련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정부 주도의 외교전을 이끌고 있다”고 전했다.
최 비서관도 자주파로 분류된다. 그는 지난해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당시 9·19 군사합의를 이끌어내면서 본격 부상했다. 주한미군 철수를 자주 언급해온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와도 가까운 최 비서관은 연세대 교수 시절인 2017년 7월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을 유지하는 데 거의 50% 이상을 지불하고 있다. 이를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미 정부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과 관련해선 “우리 정부가 당당히 주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비서관은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도 비중 있는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가에서는 자주파의 부상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자칫 한·미 관계가 나빠져 북·미 비핵화 협상과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미 대화가 교착 상태이고, 미·일 관계가 가까워지는 상황에서 미국과 마찰을 빚는 게 과연 맞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30일(현지시간) 한국의 주한미군 기지 반환 요청과 관련해 “우리는 한국과 좋은 관계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미군기지 조기 반환을 추진키로 한 것을 두고 지소미아 종료에 관한 미국의 불만 표시에 대한 맞불 성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세환 기자,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