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차명거래했는데… 금감원 직원은 왜 형사처벌 안 됐나?

입력 2019-09-02 04:06

‘금융감독원 국장 C씨. 주식 차명거래 일수 122일. 감봉 3개월. 1심 벌금 2500만원 선고.’ ‘금감원 선임조사역 B씨. 주식 차명거래 일수 364일. 정직 3개월. 수사기관 미 고발.’

다른 사람 명의로 주식을 매매한 금융감독원 직원들의 엇갈린 성적표다. C씨는 차명거래 일수가 B씨보다 적었다. 그런데도 검찰 수사를 거쳐 1심 법원에서 2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반면 B씨는 수사기관에 고발되지 않아 형사처벌을 피했다.

차이는 ‘외부기관의 조사’였다.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된 C씨는 검찰 수사를 받았다. B씨는 감사원 눈을 피했다가 뒤늦게 제보로 위법 사실이 드러났다. 금감원은 “고발이나 수사의뢰 사안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자체 징계 및 과태료만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금감원을 비롯한 금융투자업자 임직원의 차명거래 행위는 징역 3년 이하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된다.

1일 김선동 자유한국당 의원이 금감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B씨는 2016년 6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2440차례에 걸쳐 차명계좌로 주식을 거래했다. 투자 원금은 1억1100만원, 매매 일수는 364일에 달했다. 46차례 넘게 주식을 사고판 날도 있다. 금감원은 직원들의 분기별 주식매매 횟수를 10차례 이하로 제재한다. 투자 한도도 전년 근로소득 총액의 50% 이내로 제한한다.

B씨는 타인 명의 휴대전화로 주식거래를 했다. 2017년 9월 실시된 감사원 감사를 피할 수 있었던 이유다. 당시 감사원은 기업정보 관련 업무를 하던 금감원 직원 161명을 조사했다.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한 직원 138명 가운데 2명이 차명거래로 적발됐다.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은 23명에 대해 추가 조사 및 검찰 수사 의뢰도 이뤄졌다. 강제 수사권을 가진 검찰이 압수수색에 착수하자 장모 명의로 주식을 거래한 직원 등 5명이 추가로 드러났었다. 이들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에서 벌금형까지 차례로 선고받았다. B씨는 이걸 모두 피했다.

지난해 6월 제보로 B씨의 비위 행위가 드러났다. 주식 차명거래, 공인회계사 사칭 등이 적발되면서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주식 차명거래 내역은 재판에 넘겨진 금감원 직원 7명 가운데 2번째로 많았다. B씨는 이들과 함께 지난해 12월 증권선물위원회에 회부돼 과태료 2100만원 처분도 받았다. 그럼에도 형사처벌은 없었다.

금감원은 B씨를 검찰에 넘기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일반 금융회사 직원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했다”고 말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회사 직원의 주식 차명거래 행위는 ‘면직’ 수준의 경우에만 형사고발하고 있다. 금감원 직원도 이를 따른다”고 설명했다. 자본시장 조사 업무 규정에 명시된 ‘고발 또는 수사기관 통보’ 의무에 대해선 “불공정거래 조사에 국한된 규정”이라고 선을 그었다. 주식 차명거래 행위는 고발, 수사기관 통보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을 위반한 금감원 직원의 처리 기준이 일반 금융회사 직원과 같다는 점에 증선위원마저 의문을 표시했다. B씨 안건이 회부된 지난해 12월 증선위에서 한 증선위원은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며 “검사, 조사, 감독 등을 수행하는 금감원 직원은 일반 금융회사 직원보다 도덕·청렴성 등을 더 공고히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금융투자상품 보유 및 거래제한’ 규정을 위반한 금감원 직원은 92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65명(71%)의 경우 징계위원회도 열리지 않고 경고 조치 등만 받았다. 비위 행위가 적발된 경우도 10건 가운데 6건 이상(66.4%)이 외부 감사를 통해서였다. 금감원이 2015~2017년 자체 조사로 징계위를 열고 처벌한 사례는 2016년 1건(2급 직원 견책)이 유일하다.

금감원이 2년 전 발표한 ‘내부통제 강화방안’ 도입도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12월에 이어 지난 4월 열린 노사협의회에서도 근로자위원 반대에 부딪혔다.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금감원 직원의 준법·윤리 의식 제고가 급선무”라며 “(자체 조사로) 차명계좌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위법 행위를 억제하기 위한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금감원 독립성이 후퇴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