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 대학을 돌며 20년 동안 시간강사로 사회학을 가르쳐온 A씨(59)는 올해 어떤 대학에서도 강의 배정을 받지 못했다. 강의 실력을 인정받아 거점 국립대와 대형 사립대에 출강해 왔으나 올해는 1시간도 강단에 서지 못했다. 그가 가르치던 전공 및 교양 수업은 통폐합되거나 다른 교수가 맡았다. A씨는 “강사법으로 강의가 통폐합될 거란 얘기가 들려왔는데 설마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생계가 막막해 아내가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학생을 가르치지 못하는 것이 가장 마음 아프다”며 고개를 떨궜다. A씨처럼 올해 1학기 강의 기회를 완전히 잃은 시간강사가 7834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4704명은 강의로 생계를 유지하는 전업강사였다. 주로 인문사회와 예체능 계열 강사들이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29일 이런 내용을 골자로 ‘2019년 1학기 대학 강사 고용현황’을 발표했다. 정부가 대학 강사 고용현황을 실태조사하고 이를 분석해 발표한 건 처음이다. 정부가 나선 이유는 강사 신분보장과 처우 개선안을 담은 이른바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대학들이 강사 해고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팽배했기 때문이다. 이달 법 시행을 앞두고 대학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시간강사들이 담당하던 강의를 통폐합해 대규모 강의로 만드는 등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강사법은 만들어졌는데 강사가 사라졌다’는 강사 단체의 구호는 현실이었다. 올해 1학기 강사 재직 인원은 4만6925명이다. 지난해 1학기 5만8546명에 비해 1만1621명이 줄었다. 강사들은 보통 두 곳 이상의 대학에 출강한다. 중복 출강을 제외하고 대학 어디에서도 강의를 하나도 받지 못한 강사는 모두 7834명이었다.
특히 인문사회와 예체능 강사들의 피해가 컸다. 강의 기회를 상실한 강사 4704명 가운데 인문사회 분야는 1942명, 예체능 1666명이었다. 자연과학 633명, 공학 362명, 의학 101명이 뒤를 이었다. 인문사회와 예체능 분야를 합치면 3608명으로 76.7%다. 대학들이 교양 수업을 통폐합하는 방식으로 강사법에 대응할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교양 수업이 많은 인문사회나 예체능 분야에서 강사들이 많이 해고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학들이 강사법의 저촉을 받지 않는 겸임교수나 초빙교수를 늘리는 ‘풍선효과’도 확인됐다. 겸임교수는 지난해 1만8393명이었는데 올해 2만2817명으로 4424명 증가했다. 초빙교원도 같은 기간 7440명에서 7951명으로 511명 늘어났다. 대학들이 겸임·초빙교수로 강사의 빈자리를 채웠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교육부는 각종 대학평가 지표에 강사 고용안정 수준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난에 빠진 대학들이 정부 뜻대로 움직일지는 미지수라는 반응이 나온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